▲진상손님은 개인의 욕심만으로 만들어진 게 아니다. '무한서비스'를 내세우면서 모든 책임을 직원에게 지우는 기업과, 업주의 부당한 행위에 뒷짐 진 정부가 가세한 결과다. 사진은 서울 시내 한 백화점 명품매장 모습.
연합뉴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게 있다. 왜 백화점 점원들이 두 손을 모으고 직각으로 인사해야 하는지 말이다. 판매원은 제품에 관한 전문적 식견으로 고객의 선택에 도움을 주는 전문가들이다. 하지만 이들은 '고객은 왕'이라는 이데올로기 속에서, 고객의 비위를 맞추는 순수한 감정노동자로 전락했다. 여기서 피해를 보는 건 비단 힘 없는 직원만이 아니다.
직원이 행복하지 않은 기업이 성공할 수는 없다. 돈 몇 푼 때문에 자신의 존재까지 회의하게 만드는 회사에 누가 헌신하고 싶겠는가. 게다가 직원은 회사 문을 나서는 순간 또다른 고객이 된다. 직원은 가장 먼저 만족시켜야 할 고객이다. 회사는 자기가 왕인 줄 아는 분수 모르는 고객으로부터 직원을 보호해야 한다. 기업 스스로 고객들의 버릇을 망쳐 놓고 나서 그들의 횡포 속에 직원을 내던져서는 안 된다.
종업원에게 무례하게 구는 손님은 스스로 지능을 의심해야 한다. 고객의 무례를 견뎌내는 종업원이 사실은 그 뻔뻔한 고객의 소중한 고객일 수 있기 때문이다. 공동체에서 일방적인 관계란 존재하지 않는다. 한 사람이 불행해지면, 공동체는 그 몫만큼 더 살기 불행한 사회가 된다. 한국은 그리 큰 나라도 아니어서, 남의 불행이 자신의 불행으로 되돌아오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진상'들은 자신이 한국사회의 낮은 행복지수와 높은 자살률에 한몫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 결과, 안 그래도 비참한 자신의 삶이 더 비참해지고 있다는 사실도 알 필요가 있다. 남에게 존경 받는 사람들 가운데 남을 존경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진상손님'은 영혼을 잠식하고 공동체를 파괴한다 한국은 자살률이 높기도 하지만, 자살 양상도 다른 나라들과 판이하게 다르다. 유독 젊은 사람들의 자살률이 높기 때문이다. 10대, 20대, 30대 모두 사망 원인 1위가 자살이다. 자살자 성비도 특이해서, 보통 남성들 자살률이 여성보다 2~3배 높은 데 비해, 한국은 여성 자살률이 남성 자살률보다 높다. 더욱 우려스러운 점은 젊은 여성의 자살률이 계속 높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2011년 보건복지부 보고서를 보면, 1998년에서 2009년까지 20-30대 남성들의 자살 증가율은 10%대였으나, 같은 연령대의 여성 자살 증가율은 100%를 훌쩍 넘었다. 2010년 통계청 자료를 보면, 한국의 전체 취업자 가운데 약 30%가 서비스 분야에서 일하고, '서비스 종사자'의 65%와 '판매 종사자'의 51%가 여성이다. 우리가 매장과 식당에서 일상적으로 대하는 종업원 대다수가 여성이라는 말이다.
"회사에 출근하기도 힘든 거예요. 내가 기분 좋게 출근해서 기분 좋게 일을 하고 집으로 가야 되는데. 내가 얼마를 벌자고 여기 와서. 어쩔 때는 내가 진짜 도살장 끌려가는 소 마냥. 아, 오늘도 내가 출근해야 되는 구나. 오늘 여기에 또 어떤 사람들이 올까. 이런 걱정을 하고서 출근을 하는 거예요."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가 2011년 인터뷰한 대형 마트 종업원 이야기다. 고객 개개인의 태도가 서비스 종사자들과 여성들의 행복지수에 얼마나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지 알 수 있는 사례다. 사실 한국의 젊은 여성들을 괴롭히는 문제는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취업, 임금, 승진의 차별과 편견, 성범죄 등 여성에게 가혹한 사회환경이 한국 여성들의 삶을 불행하고 위태롭게 하기 때문이다. 이는 구조적 문제다.
두 번째는 개인적 문제로, 한 사람이 한 사람을 대하는 방식이다. 구조적 문제의 해결이 법 개정이나 사회적 인식의 변화 등 비교적 오랜 시간이 필요한 반면, 개인의 문제는 당장 집 밖을 나서서 해결할 수 있다. 당장 나부터 상대를 존중하고 배려하면 되기 때문이다. 여기서 여성들의 불행이 단지 '여성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 게 중요하다. 여성의 낮은 행복지수가 낮은 출산율의 직접적 원인이라는 점에서, 여성이 행복하지 않으면 한국의 미래는 없다. 물론 기업과 고객의 미래도 없다.
인권위의 2011년 소비자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판매사원들이 '소비자로 인한 스트레스로 우울증을 앓거나 질병에 걸릴 수 있다는 것을 안다'는 응답자가 81.2%나 됐다. 자신의 무례한 태도가 종업원을 불행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 짓을 계속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 잔인한 사회에 치어 살면서, 스스로 잔인한 가해자가 됐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진상손님 만드는 업주와 정부 얼마 전, 전국 백화점 직원을 공포에 떨게 한 '진상손님'이 경찰에 잡혔다. 이 고객은 사지도 않은 물건에 환불을 요구하고, 더 나아가 상품에 문제가 있어 건강이 악화됐다고 거짓말을 하면서 수십 만 원에서 수백 만 원을 뜯어 냈다. 직원이 영수증을 보여달라고 하면 '고객은 왕'이라며 소란을 피웠고, '본사에 민원을 넣어 불이익을 받게 하겠다'고 협박했다. 직원들은 돈을 줄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강탈한 돈이 천 만원이나 됐다. 모두 직원 개인 호주머니에서 나온 돈이었다. 이 고객의 체포 소식이 전해지자, 사람들은 그의 탐욕과 뻔뻔함을 비난했다. 욕 먹어 싸다. 하지만 '진상손님'은 단지 개인의 욕심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무한서비스'를 내세우면서 모든 책임을 직원에게 지우는 기업과, 업주의 부당한 행위에 뒷짐 진 정부가 가세한 결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