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1년 9월 29일 서울 서초구 공정거래위원회 앞에서 여성환경연대 등 시민사회단체 주최로 열린 가습기 살균제 피해규명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제조업체의 책임을 묻고 정부의 근본적인 사태 해결을 촉구하며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에이즈 치료제와 신종플루 백신을 생산하는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이라는 영국계 다국적 제약업체가 미국에서 30억 달러의 벌금을 물게 됐다. 30억 달러는 우리 돈으로 약 3조 4000억 원이다. 이는 미국 역사상 최대 금액의 합의금일 뿐만 아니라 단일 제약회사가 지불한 액수로도 최고 금액이다.
'글락소스미스클라인'은 당뇨병 치료제인 '아반디아(Avandia)'의 안전성 보고를 누락시키고, 18세 이하는 사용할 수 없는 항우울제 '팍실(Paxil)' 투약을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부추겼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이번 사건은 제약업계의 고질적인 불법로비 외에도 의약품의 안전성 정보와 미성년자의 건강보호를 주요한 쟁점으로 삼았다. 특히 피해자가 발생하기 전에 미리 조처가 취해져 혹시 모를 건강상 장애를 예방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바다 건너 일어난 기사를 읽으며 '가습기 살균제' 사건이 떠올랐다.
지난해 5월 출산 전후의 수십 명의 산모와 유아들이 원인 모를 폐질환 때문에 목숨을 잃었다. 이들은 가습기 살균제 사용 후 기침, 가슴 통증 등의 증상을 보이다가 급속하게 병이 악화됐다. 몇 달 후인 8월 질병관리본부는 가습기 살균제 사용 시 폐질환 위험이 47.3배 높아진다는 역학조사를 발표하면서 '원인미상 폐질환'의 위험요인으로 가습기 살균제를 추정했다.
올해 6월, 한국환경보건학회는 95명의 피해자를 조사한 보고서에서 사망자가 33%, 장기 이식 등을 받은 심각한 피해사례까지 포함하면 치명적 피해자는 39%라고 밝혔다. 이 중 어린이와 가임기 여성이 각각 65%와 26%를 차지한다.
이렇게 사망에 이르는 심각한 건강 피해가 발생했음에도 한 푼의 보상도, 벌금도, 사과 한마디도 없었다. 기업이 안전성 정보를 찾는 노력을 했는지조차 모르겠고, 판매를 허가한 정부는 피해자가 각자 알아서 소송으로 해결하라고 공식적으로 입장을 밝혔다.
그 사이 피해자들은 국무총리 면담을 거절당한 채 광화문에서 일인시위를 하고 피해자 모임을 조직하고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판매 기업이 제대로 된 안전성 정보를 찾는 노력만 기울였다면, 생떼같은 아이들이 죽는 일은 막았을 것이다.
공정거래위원회, 가습기 살균제 허위과장광고 여부 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