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복 국민석유회사 설립 준비위원회 상임대표.
김동환
사회적 기업을 만들어 20% 싼 기름을 공급하겠다고 나선 국민석유회사에 대한 시장 반응이 심상치 않다. 간단한 취지 설명만으로 20일 만에 인터넷으로 자본금 273억 원이 걷혔다.
국민석유회사는 정유 4사의 독과점 구조인 지금의 정유시장을 경쟁구도로 바꾸겠다는 목표로 설립이 추진되고 있다. 정유 4사들이 쓰는 비싼 중동산 중질유 대신 질 좋고 저렴한 시베리아산 원유를 사용해서 소비자 가격을 20% 낮추겠다는 공약(?)도 내걸었다.
보다 자세한 얘기를 듣기 위해 지난 9일 서울 신도림에 위치한 국민석유회사 사무실을 찾았다. 이태복 국민석유회사 설립 준비위원회 상임대표는 "초기 폭발적인 호응에 이어 최근에는 매일 7억~10억씩 꾸준하게 자본금이 모이고 있다"며 "높은 유가가 만든 한국 사회의 고통들이 국민석유회사에 대한 호응으로 드러난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상임대표는 이날 <오마이뉴스>와 가진 인터뷰에서 준비위원회 출범 이후 있었던 사업 현실성 논란 등 국민석유 관련한 비판에 대해 반박했다. 원유 도입가와 정제과정 비용, 운송비 등 원가를 낮춰서 석유 가격 20% 인하에 이르는 과정도 이전보다는 자세하게 밝혔다.
예상보다 빠른 속도로 자본금이 걷히면서 사업 규모가 확대될 가능성도 엿보인다. 이 상임대표는 "당초 연말까지로 예상했던 주식 약정금 1차 목표액 500억 원은 8월 중으로 모일 것 같다"면서 "자본금을 더 확충할 경우 원래 목표였던 하루 10만 배럴이 아니라 30만 배럴을 공급할 수 있는 정제시설을 만드는 식으로 사업이 진행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현재 한국의 석유 하루 소비양은 240만 배럴이다.
정유회사 설립에 필요한 작업도 진행 중이다. 이 상임대표는 "경영 자문을 위한 '경영위원회'와 석유 정제시설 관련 기술 전반을 검토하는 '기술위원회'를 가동하고 있다"고 밝혔다. 국민석유회사와 관련 중소기업의 고용 규모는 5000명으로 예상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일자리의 40%는 일찍 퇴직한 40~50대 인원으로 채울 예정이다.
국민석유회사 설립 준비위원회는 전국 주요도시에 1000명 이상의 준비위원 조직을 만드는 한편, 약정 1차 목표액인 500억 원이 모이는 대로 정부에 국민석유회사에 대한 정책적 지원 의사를 타진할 계획이다. 회사 설립은 정부 지원 의사가 확인되면 주식시장에서 자본금 납입을 받으면서 진행될 예정이다.
현재 전국 준비위원회에는 이윤구 전 적십자 총재, 김재실 전 산은캐피탈 회장, 윤종웅 전 하이트맥주 CEO, 이팔호 전 경찰청장, 안경률 전 새누리당 사무총장, 추미애·이인영 민주통합당 최고위원, 설훈·민병두 민주통합당 국회의원, 사진작가 조세현, 윤준하 환경운동연합 고문, 이부영 한국교육복지포럼 상임대표 등 사회 각계 인사 2000여 명이 참여했다.
다음은 이 상임대표와의 일문일답이다.
"원유 도입가, 정제비용, 운송비 낮춰서 석유가격 20% 내릴 것"- 국민석유 회사를 만들겠다고 한 지 19일 만에 주식 청약금이 273억(인터뷰 당시 수치)이 걷혔다. "최근에는 매일 7억~10억씩 들어오고 있다. 고유가가 만든 한국 사회의 고통들이 국민석유회사에 대한 호응으로 드러났다고 생각한다. 소비자들은 석유 가격 관련해서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다. 몇십 원 싼 곳 찾아가는 게 고작이다. 4대 정유 대기업들이 자기 주머니 채울 생각만 하다 보니 그 피해를 소비자들이 보고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기름 값 관련해서는 정부도 태스크포스(TF)까지 만들었지만 변한 게 없다. 나도 청와대에 있어봤던 사람이니까 아는데 나는 TF에 참여했던 사람들이 대통령을 기만했다고 생각한다. 어떻게든 기름 값 내리라고 만든 TF에서 결국에는 정유사에게 유리한 정책들만 나오지 않았나."
- 석유 가격을 20% 내리겠다는 공약(?)이 파격적이다. 현실성이 없다는 지적들도 많다. 정말 가능한가? "우리가 처음 얘기를 꺼낸 후에 경제신문 같은 데서 현실성이 없다고 비판들을 했다. 우리에게 구체적인 방법을 말하라는데 정유회사 홈페이지 같은 데 가 봐도 자사 홍보기사나 대차대조표 빼고는 공개한 게 없다. 굳이 그 방법을 우리가 공개해야 할 이유가 없는 거다. 지금은 또 시장 반응이 좋으니까 비판도 쑥 들어갔다. 대략적으로 밝히자면 원유 도입가를 낮추고 정제과정 비용을 낮추고 운송비를 낮춰서 석유 가격 20%를 내리겠다는 거다. 또 대주주가 없는 국민기업이고 사회적기업이니까 대주주 몫으로 갈 이익도 기름 값을 내리는데 사용되게 된다."
-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달라. "원유시장은 구매 루트가 다양하다. 구매 방법과 원산지에 따라 비슷한 시점에도 보통 5%에서 10%, 스팟(현물거래) 물량의 경우 많게는 20%까지 가격 차이가 난다. 얼마 전에는 나이지리아 산 원유가 시장가보다 20% 낮은 가격에 나오기도 했다. 국내 4대 정유사들은 대부분 값비싼 중동산 원유를 쓴다. SK같은 경우는 공급선에서 융통성이 좀 있긴 하지만 마찬가지다.
이들이 중동산 원유를 쓸 수밖에 없는 이유는 대주주가 중동 석유회사이기 때문이다. S오일 대주주는 사우디아라비아 국영석유회사인 아람코(ARAMCO)다. GS칼텍스는 미국의 메이저 정유사인 쉐브론 그룹이 50대 50으로 합작한 회사라 그쪽 이해관계가 반영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중동 원유시장에서는 아시아 국가들에게 배럴당 2달러 상당의 프리미엄을 이유 없이 더 붙인다. 한국에서는 이 프리미엄을 일년에 20억 달러 가까이 추가 부담하고 있다. 비싸다는 얘기다."
- 국민석유회사는 중동산이 아닌, 다른 원유를 쓰나.우리가 들여올려고 하는 캐나다나 시베리아산 원유는 일단 가격이 중동유에 비해 싸다. 그리고 특히 시베리아 같은 경우는 운송시간과 비용을 크게 단축시킬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러시아 블라디보스톡 인근 송유관에서 나오는 시베리아 산 원유를 실어오면 한국까지 38시간이 걸리는 반면 중동에서는 38일이 걸린다. 이 과정에서 수송비가 대폭 절감된다. 캐나다나 시베리아산 원유는 유황이 적게 함유되어 정제하는 과정에서도 탈황비용을 아낄 수 있다. 특히 한국의 4대 정유사들은 자기 계열사에서 나오는 비싼 촉매를 쓰지만 그보다 30~40% 싼 촉매를 쓰고도 얼마든지 좋은 품질의 석유를 얻을 수 있다는 게 우리 판단이다. 이미 국내 중소기업들이 이런 촉매제를 개발할 수 있는 수준이다. 이 역시 원가를 절감할 수 있는 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