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기 전투기 사업으로 도입되는 60대의 신형 전투기는 노후화된 F-4, F-5 전투기를 대체할 예정이다. 사진은 F-5F 전투기.(자료사진)
공군
미국 측이 이처럼 고압적으로 나오는 배경에는 바로 FMS가 자리잡고 있다. 통상 대규모 무기 도입 사업을 통해 구매국은 판매국으로부터 핵심 기술을 이전받거나 기술도입생산을 함으로써 국내 산업에도 긍정적인 효과를 창출할 수 있는데, FMS 방식 구매는 이를 원천적으로 통제하는 것이다.
이 방식은 무기를 공급하는 미국 업체와의 직접 협상을 통해 기술과 생산설비 등을 한국으로 이전해 달라는 요구를 차단하는 장벽이 된다. 역설계를 통한 기술유출을 막기 위해 고장이 나도 분해를 하거나 정비를 하는 것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것이다.
FMS의 허점은 또 있다. 미국 정부는 개발이 끝나서 규격화가 이뤄진 무기체계에 대해서만 품질보증을 해주고 있는데, FX사업의 유력기종인 F-35 경우 아직 개발이 진행 중이어서 원칙적으로 품질보증이 되지 않는데도 FMS 방식으로 입찰에 참여했다. 개발이 성공할지 실패할지, 또 개발 기간이 얼마나 더 걸릴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개발 후 하자에 대해서는 생산국인 미국과 구매국이 위험부담을 같이 떠안아야 한다.
지난 6월 30일 <오마이뉴스>와 만난 최종건 교수(연세대 정치외교학과)는 이런 FMS를 가리켜 "마치 자동차를 산 운전자에게 본네트도 열어보지 말라는 것이나 마찬가지 격"이라고 비유했다.
국제정치학자인 최종건 교수는 연세대학교 항공우주학술프로그램 간사교수,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 자문위원 등을 맡고 있다. 매년 연세대 문정인, 김기정 교수와 함께 공군본부 후원으로 항공우주력 국제학술회의를 주관해오고 있다.
최 교수는 "첨단 무기구입에 관한한 우리는 미국산 아니면 안 된다는 일종의 '정서적 장애'를 앓고 있는 것 같다"며 "정부가 절충교역 등 기술이전에 대한 의지보다는 한미동맹이라는 정치적 고려를 앞세워 미국산 무기 구입에 치우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또 그는 미리 시한을 못 박고 차기전투기사업을 진행하기보다는 좀 더 시간을 두고 꼼꼼히 검토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국익에 부합한다는 견해를 밝혔다.
"벤츠랑 포드, 주유구 달라서 기름 못 넣나?"다음은 최 교수와 나눈 일문일답 요약.
- 차기전투기 사업에서 '한미동맹 아래서는 미국산 무기를 선택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라는 주장이 여전히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한미동맹의 기능적 측면만을 놓고 보면 같은 무기를 쓰면 당연히 좋은 점들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저쪽 탄약이 떨어지면 우리 탄약 갖다가 쓸 수 있는 거고, 이걸 호환성 혹은 상호 운용성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건 꼭 미제끼리만 통하는 것은 아니다. 나토 스탠더드(표준)에 따라 미국 비행기에 달 수 있는 무기는 마치 카트리지 끼우듯 유럽제 비행기에도 달 수 있다. 냉전 당시부터 지금까지 미국과 유럽은 공동으로 작전하기 위해서 나토 표준을 반드시 지켜서 무기를 개발해왔다. 통신체계, 무장운용 호환성, 데이터링크, 조정체계는 사실상 미국 전투항공기와 동일하여 상호호환이 가능하다.
예를 들어보자. 리비아 사태 터졌을 때 유럽 국가들의 유러파이터가 카다피 군에 공습을 하고, 미군이 공중급유를 해줬다. 상호운용성이란 딴 게 아니다. 이를테면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을 때 독일제 벤츠하고 미제 포드 머스탱 연료 주입구가 달라서 어떤 차종은 기름을 넣지 못하나? 그렇지 않다. 미제가 아니라고 해서 상호운용성이 없다고 하는 것은 근거 없는 얘기다.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 그래서 만약에 상호 운용이 된다고 하면 그것도 공정하게 평가하자는 것이고, 설사 상호운용이 안된다고 치면 그것을 RFP(제안서) 요구할 때 반영하면 되는 것 아닌가? 그런데 우리가 상호운용성 때문에 뭐는 안 된다고 지레 우리의 의도를 얘기하다보면, 세계 제2위의 재래식 무기 수입국인 대한민국이 스스로의 레버리지(지렛대효과)를 죽여버리는 결과가 된다."
- 어느 기고문에서 한국군의 대미 무기 종속문제를 지적하면서 '정서적 장애'라는 표현을 썼다."사실 우리는 동맹이 매우 비싼 비용을 치러야 한다는 것을 간과하고 있다. 우리가 미국과 동맹이었기 때문에 미국산을 쓴 것은 사실이고, 우리가 군사원조를 받았기 때문에 경로 종속이 생긴 것도 사실이다. 한국군은 대미편중으로 인해 최첨단 장비의 경우 미국산 무기체계로 무장하고 있고, 동맹 체제 내에서 무기체계 상호운영성의 논리는 미국 무기를 구매해야만 한다는 필연론을 강화시켰다.
이것은 엄연한 팩트인데, 내 말은 미국산 재래식 무기의 43%가 대한민국으로 오고, 우리가 사용하는 무기의 73%가 미제라면, 동맹의 경제적 측면도 따져봐야 한다는 것이다. 100% 우리 국민의 혈세로 무기를 사오는 건데 이것만큼 정치적인 이유가 어디 있는가. 그렇다면 우리 전장 환경에 알맞는 좋은 무기를 가장 저렴하게 사야 하지 않겠나.
전투기 60대에 8조3000억이고, 전력화되는 2017~2018년부터 30년 동안 우리 후손들이 탈 전투기인데, 그렇다면 충분히 고민하고 궁리를 해서 사야 될 것 아닌가. FX 사업에서 미국산 전투기들은 미운용 기종이거나 개발 단계에 있는 반면 유럽산 전투기는 실전에 배치돼 있는 기종이지만, 한국이 한 번도 미국산 이외의 기종을 선택한 적이 없다는 정서적 장애가 있다.
하지만 미국의 동맹국들인 영국, 독일, 스페인, 이탈리아,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미국제 전투기와 유럽산 전투기를 동시에 운용하고 있다는 점은 운용적합성에 대한 우리의 강박증이 사실상 매우 정서적인 부분일 수도 있다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다."
"물건 사는 사람이 데드라인을... 정말 어리석은 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