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소리> 50호 표지
박도
반갑습니다. 재일 동포 여러분을 사랑합니다. 존경합니다. 저는 여러분의 고국에서 온 작가 박도입니다. 동포 여러분! 정말 반갑습니다.
여러분을 뵈니 제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고모를 뵌 듯 반갑습니다. 제 할아버지는 1900년에 경상북도 선산군 도개면 도개라는 곳에서 집안 종손으로 태어나 열한 살 때 나라가 망하는 것을 보시고, 스무 살 때는 기미 만세운동을 보셨습니다.
청년 시절 망국민의 백성으로 마음 붙일 곳이 없어 그 시절 회오리바람처럼 일어났던 민족종교인 보천교에 몰입하여 전 재산을 헌납하셨답니다. 그러다가 집안어른과 가족들로부터 재산을 날린 추궁을 당하자 어느 날 송아지를 파신다고 선산 장에 가셔서 송아지를 판 다음 여비를 마련하자 아무 가족들에게 알리지 않고, 그 길로 관부연락선을 타고 일본에 가셨답니다.
할아버지가 일본에 와서 처음 한 일은 일본말을 몰라 도쿄 거리에서 100엔짜리 잡화를 파셨다는데, "100엔!"이라는 말만 외쳤다고 하시더군요. 그 뒤는 고물장사를 하셨다는데, 리어카를 끌고 도쿄 골목마다 다니며 고물을 수집하여 분리한 뒤 도매상에 파셨답니다.
그리고 뒤늦게 도쿄로 온할머니와 고모들은 홀치기로 생계를 도왔고, 저의 아버지는 나토 장사와 신문배달로 도쿄에 있는 주계상업학교를 다니셨다 하시더군요. 그러시다가 할아버지와 할머니 고모들은 대동아전쟁 중 귀국하여 경북 구미에 터전을 잡으셨고, 아버지는 종전 직전 귀국하여 다행히 저희 집안은 일본 땅에 남지 않았습니다.
다만 둘째 고모만은 귀국 도중 도쿄 역에서 혼란한 소용돌이 속에 그만 아들을 잃어버렸는데, 아직도 그 아들의 생사를 모르고 있습니다. 올해 94세인 고모님은 아직도 그 아들을 자나깨나 잊지 못하고 애타게 기다리고 있습니다. 만일 그때 우리 가족도 귀국치 못하였다면 지금 여러분과 같이 도쿄에 거주하는 재일동포가 되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