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16일 오전 서울 관악구 관악로 서울대학교에서 2012학년도 정시모집 논술고사를 치르는 수험생 학부모들이 대기실에서 자녀들을 기다리고 있다.
연합뉴스
그러나 사실 국립대 통합네트워크는 '서울대 폐지'보다 '대학 평준화'에 강조점이 찍혀 있는 방안이다. 전국 국립대의 입시전형과 학점, 학위를 공동으로 진행함으로써 대학서열체제를 근본적으로 혁파하겠다는 것이 가장 중요한 목표였다. 물론 평준화의 범위 역시 국공립대를 중심으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정확한 표현은 아니다.
이것이 전적으로 '진보·개혁진영'만의 생각이었던 것도 아니다. 새누리당의 정두언 의원은 지난 2011년 제출한 국정감사 자료집에서 '공교육 혁신 10대 과제'에 국립대 통합네트워크를 포함했다. 전국 국립대의 교육 경쟁력과 책무성을 강화하기 위해 통합 운영체제를 구축, 신입생을 공동 선발하고 졸업자에게는 동일한 학위를 수여하자는 것으로 국립대 통합네트워크 안과 동일하다. 올해 1월 정두언 의원이 박근혜 비대위에 제출한 '서민·중산층을 위한 공교육 혁신 11대 과제'에도 '국립대 통합 운영체제 구축'이 포함되어 있다.
새누리당 의원이 공교육 혁신 주장한 이유 이처럼 진보정당만이 아니라 민주통합당과 새누리당의 일부 인사까지 평준화를 지향하는 전면적인 대학체제개편을 언급하고 있는 것은, 더 이상 대학을 근본적으로 뜯어고치지 않고서는 어떤 교육문제도 해결할 수 없다는 인식이 공감대를 얻고 있기 때문이다.
김상곤 경기도교육감이 지난 2월 13일 기자회견을 열고 "최고의 교육복지는 대학교육 혁신을 통한 초중등교육의 정상화"라고 주장하며 7가지 대학혁신과제를 제안한 것 역시 이런 맥락이다. 최고 명문대에 자녀를 진학시켜야 한다는 확고한 목표를 전국민이 공유하고 무지막지한 레이스를 펼치는 풍경은 이미 경쟁이 가져다 줄 수 있는 순기능을 넘었다.
이렇게 본다면, 지금의 논란은 두 개의 패러다임 간의 각축을 예고한다. 하나는 1995년 5.31교육개혁안에서부터 촉발된 '경쟁 패러다임'이고, 다른 하나는 이를 대체하려는 '공공성 패러다임'이다.
이 중 대학 간·학생 간 무한 경쟁을 통해 대학발전을 도모하겠다는 경쟁 패러다임은 1996년 대학설립준칙주의를 도입한 뒤 2010년까지 일반대는 38개교, 전문대학은 19개교, 대학원대학은 37개교를 늘려 대학진학률을 80% 수준으로까지 끌어 올렸다.
대학과 대학생수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기존에 대학과 대학생이 누렸던 사회적 위상은 추락했고, 변별력이 없어진 '대학학력'을 대체하는 학벌체계가 더욱 강화되었다. '수도권, 서울, 명문대, 명문대 내의 좋은 과'로 촘촘하게 짜여 있는 서열체계는 수험생에게는 만성적인 불안의 압박을, 낙오자에게는 벗어날 수 없는 패배감을 안겨주고 있다.
서열을 평가하는 지표에 따라 각 대학이 등록금 인상을 통한 재정확보에 열을 올리게 만든 것은 부수적 효과다. 12년 동안 진행되어온 무차별 '경쟁 패러다임'은 찬란하고 거대한 대학건물을 우후죽순 만들어냈지만, 학업에 열중해야할 학생들은 그 건물을 짓는 데 들어갈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아르바이트 시장에 뛰어들어야 했다. 또 다른 경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기 위해 강요당하는 각종 '스펙쌓기'로 대학생의 사교육비는 고등학생 사교육비를 넘어선 지 오래다.
이런 참혹한 결과를 극복하기 위해 등장한 '공공성 패러다임'의 핵심에 자리해 왔던 것이 바로 '국립대 통합네트워크'라는 아이디어였다. 그동안 진보교육진영에서는 국립대 통합네트워크의 기본 아이디어를 공유하면서도 국립대의 전국계열별 특성화 전략이나 국립교양대학안, 혁신대학네트워크 등 여러 개선책을 제시해 왔다.
문제는 이런 논의들이 여전히 각 정당의 정책공약 개발 수준에 머물거나 몇몇 교육단체들 간의 논쟁으로만 제한되어 있다는 점이다.
진보와 보수 모두의 고민, 대학 체제 개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