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부가 19일 발표한 2012년 제1차 학교폭력 실태조사 전국 학교 현황.
윤근혁
삼척동자도 다 아는 얘기지만, 그간 설문조사 없어서 학교폭력이 빈발하는 건 아니다. 정확한 실태가 궁금하면 학교의 도움을 받으면 된다. 학교가 굳이 은폐한다고 의심된다면, 무작정 학교를 배제할 게 아니라, 왜 숨기려고 하는지 이유를 먼저 찾아보는 게 순리다. 백 보 양보해서, 학교를 배제한 교과부의 이러한 설문조사 방식은 그저 아이들을 '겁박하는' 효과만 있을 따름이다.
아무리 공교육이 무너지고 있다 해도, 단언컨대, 학교와 교사를 불신해서는 결코 학교폭력을 해결할 수 없다. 학교폭력이 발생하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교사에게 법적, 도의적 책임을 묻지만, 우리 사회는 지금껏 그들의 헌신에 신뢰를 보내기는커녕 도매금으로 의심하고 욕해오지 않았나. 과연 이게 '닭이 먼저냐, 알이 먼저냐'의 문제일까.
전화기에 대고 마치 윽박지르듯 따졌지만, 그나 나나 무슨 감정이 있어 다투나 싶어, 교육청 담당자의 요구를 무시하진 못했다. 사실 10%라면 세 학급 정도만 양해를 구하고 잠시 시간을 빌리면 되는 별 것 아닌 수치다. 문제는 아이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도록 하는 게 아니라, 단지 수치를 맞추기 위해 '동원'된다는 점이다.
담당자의 말에 의하면, 참여율이 무려 90%나 되는 학교도 있다고 한다. 이는 전교생이 정규 수업시간에 학교 내 컴퓨터실에 모여 동시에 설문조사에 응하지 않고서는 불가능에 가까운 수치다. 그런 '성의 있는' 학교도 있는데, 참여율이 10%도 안 되어서야 하겠느냐는 간접적인 질책이다. 학교폭력이라는 엄중한 문제를 두고, 교과부도, 교육청도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격이다.
설문조사는 교과부와 교육청이 실시하지만, 그 결과는 계량화되어 학교에 그대로 통보된다. 결국 생활지도의 몫과 책임은 학교일 수밖에 없다. 지난해 말 실시돼 4월 말 학교로 통지된 설문조사의 결과 문건을 보면, 엄청난 예산만 낭비한 교과부의 '뻘짓'이었음이 드러난다. 통계적 유의미 여부를 떠나, 학교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명시한 내용이 하나마나한 소리로 채워져 있다.
귀교에 '일진'이 존재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바 점검을 요하며, 학교폭력 예방교육 실시와 사례를 구체적으로 파악해 적절하게 조치할 것.확인해 보니, 회수율 수치가 다소 차이가 날 뿐, 주변의 다른 학교의 것도 대동소이했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다 아는 내용이다. 고작 이런 조언 해주려고 그 엄청난 예산과 시간과 노력을 쏟았나.
설문조사 결과에 따른 대책이랍시고, 전가의 보도처럼 학생, 교사, 학부모들을 대상으로 한 학기당 1~2회 이상의 학교폭력 예방교육을 실시하라며 난리다. 내놓는 대책마저 하나마나한 소리다. 학교마다 일진이 있다는 것쯤은 다 알고 있고, 예방교육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걸 모르는 이는 없다. 문제는 정책적 '디테일'이다.
실적 보고용 '숫자놀음'은 그만... 학교를 괴롭히지 마라교사들의 반응은 하나같이 시큰둥하다. 학기당 2회 이상 학생 상담 의무화 지침을 두고 '상담'이 아닌, '2회 이상'에 방점이 찍히고, 상담 능력 강화를 위한 교사당 연간 30시간 이상 연수 의무화도 '연간 30시간'에 우선 눈길이 간다. 이런 '서류상' 대책을 수도 없이 경험한 탓에 몸과 마음이 관행에 찌들어버렸기 때문이다.
학교폭력이 열악한 가정환경과 가정교육의 부재에 기인한다는 분석까지는 그렇다쳐도, 학기당 1회 이상 학부모 의무 연수를 대책이랍시고 내놓는 것은 우스꽝스럽기 그지없다. 맞벌이가 태반인 현실에서, 학부모를 대상으로 한 학교폭력 예방교육은 대개 가정통신문으로 대체되고, 곧장 폐지함에 버려지기 일쑤다. 곧, 실적으로 보고는 하지만 정작 아무런 효과는 없는 '시늉'일 수밖에 없다.
요컨대, 교과부와 교육청이 내놓는 대책마다 실효성 없는 '미사여구'이거나 실적 보고용 '숫자놀음'일 뿐이다. 사실 그들 역시 그런 대책으로 학교폭력이 근절되기는커녕 줄어들기 어렵다는 것을 모르진 않는다. 거칠게 말해서, 아이들은 그만두고라도 그런 방식으로 기성세대의 학교폭력과 인권에 대한 감수성이 신장될 리 만무하다. 그저 손 놓고 있을 수 없기에 급조한 티가 역력하다.
장강의 뒷물이 앞의 강물을 밀어내듯, 차라리 대학의 교사 양성 커리큘럼을 대대적으로 개편하고 교사 임용 제도를 혁신하는 방식으로 미래 교사의 '질'을 높이고, 차제에 학교교육의 목표를 지식 전수에서 인성 교육으로 대전환하자는 공감대를 확산시키는 것이 근본적인 대책에 더 가깝지 않을까. 현 정부에 실효적인 대책을 수립해달라고 요청하지 않겠다. 단지 이 따위 쓸모없는 설문조사 등으로 학교를 괴롭히지만 말아 달라.
하긴, 아이들은 일제고사로, 교사는 성과급으로, 학교는 학교평가로, 전혀 교육적이지 않은 잣대로 끊임없이 줄을 세우려는 현 정부에 뭘 바라겠는가. 안타깝게도, 학교가 시나브로 무한경쟁의 정글로 변해가면서 학교폭력이 나날이 흉포화하고 우리 교육에 희망이라는 두 글자를 빠르게 지워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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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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