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석거 주변에는 다양한 예술 문화활동의 공간이 있다
서정일
고개 아래 1번 국도와 갈리는 곳에 갑옷 입은 노송장군들이 700여 미터를 도열해 있다. 노송지대다. 황송한 도열에 임금이 된 듯 한 기분이다. 소나무 가로수는 이 구간을 포함해 옛 경수간 국도 따라 약 5km를 이어진다.
정조대왕이 생부 장헌세자의 원침인 현릉원의 식목관에게 내탕금 1천 냥을 하사해 소나무 500주와 능수버들 40주를 심게 한 것이 기원이다. 비록 당시의 소나무들이 대부분 고사했지만 효행공원 부근 9주, 삼풍가든 부근 21주, 송정초등학교 부근 8주 총 38주는 보호송으로 정조의 효성과 사도세자의 슬픔이 남아있다.
출발한지 1시간 반이 지나 만석거에 도착했다. 시작은 농사용 저수지였지만 지금은 휴식·생태·문화 등으로 활용되고 있는 저수지. 가뭄이 심하던 1795년 정조대왕의 명에 의해 만들어졌으며 일왕저수지, 교구정, 방죽, 북지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렸다.
"저수지였구나" 만석거를 그 정도의 시각으로 낮춰 부른다면 중요한 것을 빠트리는 결과다. 이곳에는 신·구관 부사 유수들이 관인을 인수인계하고 정조대왕이 능행차시 민원도 처리할 겸 잠시 쉬던 장소인 영화정이 있다. 역사적으로 중요한 장소였고 문화가 살아있던 곳이다.
지금도 수원미술관, 슬기샘도서관, 야외음악당 등이 자리하고 있어 책과 문화와 예술이 함께하고 있으며 최근 독서와 이야기를 나누는 사랑방 역할을 할 에코레스피까지 문을 열어 지역농산물과 사회적기업상품도 판매하면서 중심체역할을 하고 있다.
영화정이 과거의 문화 중심지였다면 지금은 에코 레스피를 비롯해 주변의 문화. 예술의 장소들이 영화정을 대신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때문에 만석거는 효행길 걷기 여행의 중간 기착지에 불과하지만 최종 목적지라해도 손색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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