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훈 중위 가족의 일상행복했던 김훈 중위 가족. 1998년 2월 24일, 그날 이후 이 가정의 행복한 일상은 사라졌다.
고상만
1998년 4월 29일, 주한미군 범죄수사대장 워잭 중령은 "한국군 부검 군의관이 자살소견을 보내와 이를 참고해 수사 결론을 내렸다"고 발표합니다. 워잭 중령은 이런 결론을 내린 근거로 현장에서 발견된 권총이 김훈 중위에게 지급된 개인 화기였고, 김 중위 시신에서 권총 자살자의 전형적인 특징인 밀착접사의 흔적인 총구 누름자국이 나타났으며, 머리에 바짝 대고 쏘았기 때문에 두개강이 소음기 역할을 해 총성이 나지 않았다는 점 등을 들었습니다.
하지만 이후 한국군 주도로 진행된 2차 수사 결과 워잭 중령의 발표 내용이 대부분 사실이 아니라는 것이 드러났죠. 즉, 현장에서 발견된 권총은 김훈 중위의 것이 아니었으며, 밀착접사의 증거라던 총구 누름자국이 김 중위의 시신에서는 나타나지 않았다는 것이 밝혀진 것입니다. 또 인근 GP 근무자들이 김 중위 사망 추정 시간에 총성을 들었다는 사실도 확인됐습니다. 2차 조사를 담당했던 육군 고등검찰부가 내린 결론은 '김훈 중위 시신에 남겨진 흔적은 (권총자살의 유력한 증거인) 밀착접사가 아니고 근접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결론은 이후 국방부 특별 합동조사단(아래 특조단)의 3차 조사에서 다시 뒤집힙니다. 1999년 1월 15일 국방부 특조단은 자신들이 주최한 법의학토론회에서 미 국방부 사체감식관 제리 더글러스 스펜서 박사가 작성한 소견서를 자살의 또 다른 증거로 제시했습니다. 이 소견서를 요약하면 "김 중위 시신의 사입구에 총구 누름자국이 있는 것은 밀착접사로 그가 자살했음을 입증한다. (중략) M9 베레타 같은 반자동 권총은 일반적으로 발사자의 손에 뇌관화약이 나타나지 않는다. 이 때문에 김 중위 오른손에서도 화약흔이 나타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는 내용입니다.
미국 수사기관 자료와는 전혀 다른 스펜서의 자살 소견
그런데 스펜서 박사의 이런 소견은 아무런 근거가 없는 것이었습니다. 무엇보다 2차 조사를 담당한 육군 고등검찰부가 이미 김훈 중위의 오른쪽 관자놀이에 총구 누름자국이 없었다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입니다. 스펜서 박사에게 김훈 중위 사체와 관련된 정보를 전달한 것이 초동수사 결과를 발표했던 미군 CID라는 것을 감안하면 스펜서 박사가 잘못된 정보에 근거해서 자살이라는 결론을 내렸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런데 스펜서 박사의 소견서를 꼼꼼히 살펴보면 의문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닙니다. 그는 "일반적으로 반자동 권총은 발사자 손에 뇌관화약 성분이 남지 않는다"는 견해를 밝혔지만, 이는 미국의 여러 수사기관에서 시험한 결과와는 전혀 다릅니다. 총기 소지가 자유로워서 총기 관련 사망 사건이 많은 미국의 특성상 총기발사자의 손에서 발견되는 뇌관화약 성분에 대한 자료는 풍부하게 축적되어 있습니다.
콜로라도주 덴버 경찰청 홈페이지를 한 번 볼까요. 이곳에는 김훈 중위 사망 사건에 사용된 M9 베레타 같은 반자동 권총을 발사한 경우에는 방아쇠를 당긴 손 바륨과 안티몬, 납 등 뇌관화약 성분이 다량 부착된다고 나와 있습니다. 덴버 경찰청뿐만 아니라 제가 입수한 미국 범죄수사학 교과서(Advanced Forensic Criminal Defense Investigations)에도 "반자동 권총은 발사시에 손에 뇌관화약 잔재물이 부착된다"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스펜서 박사의 견해와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죠.
무엇보다 스펜서 박사는 자신이 내린 이런 결론에 대해 그 근거를 전혀 제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소견서에 그저 "경험칙상"이라는 애매한 단어를 쓰고 있을 뿐이죠. 그가 왜 명백한 자료를 부정하면서 일반적으로 반자동 권총에서는 뇌관화약 성분이 발견되지 않는다는 소견서를 보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동안 김훈 중위 유족은 스펜서 박사가 왜 이런 소견을 냈는지 알기 위해 몇 년 동안 그의 행방을 백방으로 수소문했습니다. 얼마 전 유족은 스펜서 박사와 관련한 놀라운 사실을 알아냈습니다. 바로 스펜서 박사의 도덕성과 관련된 중요한 사실이었죠.
자살 소견 보낸 미국 법의학자는 비윤리적 행위로 파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