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빛이 하도 투명해 쓰러진 나무마저 온통 비치던 구채구의 호수
박은선
"꺄아! 여기 완전 동화 속 세상이다!"Y가 비명까지 지르며 환호했다. 정말 그랬다. 생각처럼 아니 생각보다 구채구는 아름다웠다. '하이타이'를 쏟아놓은 듯 부글거리는 수십 개의 장대한 폭포도 놀라웠지만 영롱한 빛깔의 호수들은 말 그대로 환상이고 동화였다. 고상하게는 에메랄드 빛, '싼티' 나게는 '파워에이드' 색 호수도 있었고 하늘색, 옥색, 남색, 쪽빛, 코발트색, 청록색 등 표현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푸른빛과 표현할 수 없는 또 다른 푸른빛 호수들이 끝없이 이어졌다.
어떤 호수는 표면이 햇빛에 반짝이는 육각형 물비늘이 가득해 Y로부터 '뱀피호수'라는 별명을 헌사받기도 했다. 색도 색이지만 투명함도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아무리 진한 푸른빛의 호수도 쓰러진 나무와 조약돌들까지 선명하게 비칠 정도로 투명했다. 시선을 멀리 보내면 앞산이 고스란히 비쳐 어디가 하늘이고 어디가 물인지 알 수 없었다. 화려하면서도 단아한 그 물빛들은 왜 중국 최고의 여행지로 구채구가 손꼽히는지 말없이 보여주었다.
그리고 여기엔 중국 정부의 노력도 큰 기여를 하고 있는 듯했다. 곳곳에서 장족 사람들이 쓰레기를 줍고 있었고 호수마다 '입수금지'란 표지판과 함께 관리 직원들의 삼엄한 경비가 있었다. 그러니 손 끝 하나 담글 수 없음은 물론이요 물수제비조차 뜰 수 없었다. 관광객들은 손끝에 물 한 방울 느껴보지 못하고 그저 눈과 사진기에만 그 물빛을 담아야 했다.
철저한 관리 속에 태고의 숨결을 그대로 품은 물빛이었다. 하지만 역시나 나에게는 물빛보다 장족들의 삶이 관심사였다. 쓰레기를 줍는 장족들도 신기했고 호숫가에서 사진을 찍고 있으면 어느샌가 곁에 나타나는 전통 옷을 입은 장족들도 그랬다.
곁에 다가온 이들은 한쪽 팔에 자신들이 입은 것과 비슷한 전통의상 몇 벌씩을 걸치고 있었는데 자꾸만 옷을 들이밀며 입어볼 것을 권유했다. 신기한 마음에 대충 걸쳐보자 얼른 내 머리에 전통모자까지 씌우고는 빛의 속도로 사진을 찍어줬다. 고맙다는 말을 건네자 돌아온 것은 쑥 내민 손과 함께 "우콰이"란 말이었다. 사진 찍어준 비용 5위안을 달라는 것.
한 아주머니는 새끼양 한 마리를 안고 다니다가 나에게 안겨주었는데 역시나 사진 한 방 찍어주곤 '우콰이!'를 외쳤다. 뭔가 당했다는 기분이 들긴 했지만 화장기 하나 없이 순박하게 씌익 웃는 그분들의 얼굴은 번번이 내 지갑을 열게 만들었다.
나는 이분들과 얘기를 나누고 싶었다. 하지만 돈을 받고 나면 재빠르게 다른 관광객들에게 로 가버려 단 한 마디도 나눌 수 없었다. 내가 이들을 다시 만나 조금이나마 얘기 나눌 수 있었던 것은 저녁 무렵이나 되어서였다.
구채구 장족 민가 '잠입'을 감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