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경비구역에서 근무하는 남북병사들의 우정과 비극을 그린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
명필름
이 날의 상영작은 <공동경비구역 JSA>였다. 한국인이라면 이미 제목만 들어도 가슴이 찡해지는 영화 아닌가. 박찬욱 감독에 이병헌과 송강호, 이영애와 신하균, 김태우가 주연을 맡아 연기한, '공동경비구역'에서 근무하는 남북 병사들의 이야기.
원래 내 계획은 10분 정도 일찍 도착해서 우리가 보게 될 영화가 무엇인지 확인한 다음, 친구들에게 '이 영화는 말이지' 하며 어떤 내용인지와 한국의 어떠한 부분에 대해서 알 수 있는 영화인지 설명해주는 거였다. 부랴부랴 서둘러 오느라 미처 그러한 설명을 해주지 못했음을 아쉬워하는 순간에 막이 올랐다.
영화가 시작되고 얼마나 지났을까. 얼마 지나지 않아 내 양 옆으로 앉은 페루, 영국인 친구들이 내게 자그마한 불편을 호소했다.
"생각해보니 한국 영화라 영어자막이잖아. 자막 속도 따라가며 읽기 힘드네."사실이었다. 영화 초반에 JSA에서 일어난 총기 발사, 교전 상황 등에 관련된 사건에 관해 주인공들이 수사받는 장면에선 많은 대사들로 인해 자막들이 길게 나왔고, 그럼에도 내용 전개를 위해 자막이 넘어가는 속도가 조금 빠르다고 생각했다. 나는 '조금만 참으라'며 친구들을 다독였다.
조사를 받던 주인공 중 한 명, 한국군 일병이 자살을 시도하면서 내 친구들과 극장 안은 쥐죽은 듯 조용해졌다. 사건 수사에 대한 내용에서 벗어나면서 자막도 조금씩 읽기 편해졌고, 내용이 진전되며 사람들이 영화에 몰입하기 시작했기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영화는 천천히 보여주었다. 왜 남북한 병사들이 서로에게 총을 겨누어야 했는지를. 그리고 사건 이전의 회상 장면으로 넘어가 남북한 병사들의 소박하고 훈훈한 우정을 그리기도 했다. 그 우정이 남북의 대치상황 때문에 짓눌려 안타깝게 망가져야만 했던 이야기를 통해 한반도의 슬픈 분단현실을 느낄 수 있는 영화였다.
영화가 끝나고 건물 안이 다시 환해졌다. 그 순간, 영화를 본 사람들이 일제히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밝아진 상영관을 둘러보니, 대부분 외국인들이거나, 나처럼 외국인 지인을 데려온 한국인들 같았다. 가슴이 벅차오르는 것을 느끼면서, 아트갤러리를 천천히 걸어나왔다. 나와 함께했던 친구들은 상영시간 내내 기다리며 참았을 이야기와 질문들을 나에게 쏟아내기 시작했다.
"슬픈 이야기다. 친구들끼리 서로 쏴야만 했네.""그럼에도 우정을 지키려했던 장면, 감동적이다.""하모니카 반주와 나온 그 노래('이등병의 편지'를 말함)는 가사가 어떤 내용이야?""그런데 한국은 원래 북한과 같은 나라였어? 왜 나뉘어지게 된거야?"이런저런 질문에 자세히 대답해주다가, 나는 자연스럽게 한국전쟁에 대해 이야기하게 되었다. 한민족이 남과 북으로 갈라져야만 했던 슬픈 이야기부터, 1950년 6월 25일 서로에게 총부리를 겨누어야 했던 아픔까지도. 그리고 나는 친구들에게 '직접 보여주고 느끼도록 해주자'는 생각을 이어갔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시드니 중심부에서 도보로 30분 정도 거리에 위치한 '센테니얼 공원(Centennial Park)'에 들렀다.
한국전쟁 참전국이었던 호주, 그들도 기억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