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4일 통합진보당 당사 앞에서 당원장으로 치러진 고 박영재씨 영결식에 구당권파 이정희 전 공동대표와 이석기 김재연 의원이 나란히 참석해 흐느끼고 있다.
남소연
곧 모든 것이 드러난다. 그 결과에 따라 책임이 뒤따른다. 진실을 외면하고 책임을 미룬다면, 파국을 맞는다. 뻔한 시나리오다. 통합진보당 구당권파가 집어들 것으로 보이는 시나리오이기도 하다.
통합진보당은 26일 진상조사특별위원회(이하 진상조사특위) 보고서를 발표할 예정이다. 발표 시각은 이날 오후 4시 당 전국운영위원회에서 보고서가 의결된 직후가 될 가능성이 높다. 이번 보고서는 지난달 2일 발표된 1차 진상조사보고서의 미흡한 부분을 추가·보강 조사한 것이다.
아직 어떤 결과가 나올지 알 수 없다. 하지만 구당권파는 이미 '이석기 의원 지키기'로 입장을 정한 것으로 보인다. 구당권파는 25일 1차 진상조사 결과와 다르지 않은 진상조사특위의 일부 자료가 공개된 것을 두고 "1차 진상조사결과는 허위였다"고 주장했다. 이석기 의원과 관련된 부정 의혹은 애써 무시했다.
진상조사특위 보고서 발표 이후에도 구당권파가 진실을 외면할 경우, 구당권파는 정치적 회생불능 상태로 빠질 가능성이 높다. 구당권파 쪽 세를 업고 당 대표 경선에 뛰어든 강병기 후보는 이석기 의원 제명을 비판했던 당초 입장을 바꿨다. 야권연대 파트너인 민주통합당과 당원의 50%가량을 차지하는 민주노총의 압박 역시 무시할 수 없다. 무엇보다 구당권파에서 멀어진 국민의 마음을 돌이킬 수 없다.
오병윤 "1차 진상조사보고서는 허위" 주장당권파인 오병윤·이상규 의원은 25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1차 진상조사보고서는 허위였다"고 발표했다. 이 회견은 이날 오전 <한겨레>가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경선 당시 후보 대부분이 '동일 IP(인터넷 고유 주소)'에서 몰표를 받았다는 진상조사특위 일부 자료를 보도한 기사에 따른 것이다.
이 신문에 따르면, 국민참여당 계열의 오옥만 후보는 제주도의 한 건설회사 사무실에서 270표 몰표를 받았다. 같은 IP에서 이뤄진 투표였다. 이 건설회사 사무실을 운영하고 있는 고아무개씨는 1차 진상조사위원이었다. 이석기 의원 역시 82명이 투표한 현대차 한 지역공장 노조 사무실에서 82표 몰표를 얻었다.
오병윤·이상규 의원은 오옥만 후보의 예를 들면서 "1차 진상조사보고서는 도둑이 매를 든 허위·날조 보고서임이 입증됐다"고 지적했다. 또한 이들은 "범죄자가 수사와 판결에 참여하여 자신의 범죄사실을 은폐하고 사건과 무관한 타인에게 범죄사실을 뒤집어 씌우려한 정황을 알 수 있다, 제2의 유서대필 사건"이라고 비판했다.
하지만 회견 후 기자들을 만난 오병윤 의원은 이석기 의원 역시 동일 IP에서 이뤄진 투표에서 100% 몰표를 받은 것에서는 입을 다물었다. 오병윤 의원은 "오옥만 후보는 사퇴했다, 이석기 의원도 사퇴해야 한다고 생각하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답을 피한 뒤 "진상조사보고서에서 밝혀질 것"이라고 말했다.
오병윤 의원은 "1차 진상조사보고서가 허위"라고 판단한 근거도 밝히지 못했다. 오 의원은 취재진의 관련 질문에 "진실인지 무엇인지 봐 달라, 거짓 없는 세상이 될 수 있도록 해 달라"며 동문서답을 했다. 오 의원은 계속된 취재진의 질문에도 답을 하지 않고 자리를 떴다.
당사자인 이석기 의원 쪽은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고 밝혔다. 이석기 의원실 관계자는 "보고서가 공개되고 검증을 거친 후 입장을 밝힐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이 의원이 현대차의 한 지역공장에서 몰표를 받은 것과 관련 "부정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당원들이 이 후보를 밀어주자면서 투표를 했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석기 지키기'에 나선 구당권파, 어떤 선택을 할까? 아직 진상조사특위 보고서 초안조차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구당권파 소속 의원들이 한 언론 보도를 인용해 "1차 진상조사보고서는 허위"라고 주장하는 것은 이석기 의원 지키기를 위한 '물타기'라는 비판이 나온다.
박승흡 강기갑 후보 선거대책위원회 대변인은 "더 큰 부실과 부정을 가리기 위한 사전 '물타기'는 아닌지, 소위 '짜고 치는 고스톱'은 아닌지 의구심을 갖게 된다"며 "긴급하게 대응해야 할 그 어떤 다급함이 있나 보다, 이제 하루만 지나면 모든 사안이 가감 없이 국민 앞에 보고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박승흡 대변인은 이어 "이날 보도만으로도 1차 진상보고서를 재확인하는 것일 뿐이며, 1차 조사 결과만으로도 총체적 부실·부정에 대한 정치적 공동책임을 당원과 국민 앞에 져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웅변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구당권파 쪽 지지를 받는 강병기 당 대표 후보는 처음으로 이석기 의원 제명을 언급했다. 강 후보는 25일 오전 MBC 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이석기·김재연 의원) 두 분이 정치적 책임이 명확하다면 당연히 우리 당에서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조치를 해야 된다"고 말했다. 그는 출당과 제명까지 포함된다고 강조했다.
진상조사특위 보고서가 총체적 부정·부실이 없었다는 결론을 내리지 않는 이상, 강기갑·강병기 후보 중 누가 당 대표가 되든 이석기 의원 제명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이는 '이석기 의원 지키기'에 대한 입장을 포기하지 않을 것으로 보이는 구당권파에도 큰 타격이 될 터다.
지금껏 이석기·김재연 의원 제명을 비판하며 "진상조사특위 보고서 결과를 기다리자"고 주장해온 구당권파가 말을 바꿔 진실을 외면하면 당 안팎의 비판을 피할 수 없다. 이후 정치적 행동은 크게 제약될 수밖에 없다. 구당권파가 어떤 선택을 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댓글
오마이뉴스 사진기자.
진심의 무게처럼 묵직한 카메라로 담는 한 컷 한 컷이
외로운 섬처럼 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징검다리가 되길 바라며
오늘도 묵묵히 셔터를 누릅니다.
오마이뉴스 법조팀 기자입니다. 제가 쓰는 한 문장 한 문장이 우리 사회를 행복하게 만드는 데에 필요한 소중한 밑거름이 되기를 바랍니다. 댓글이나 페이스북 등으로 소통하고자 합니다. 언제든지 연락주세요.
공유하기
진상조사특위 "비례대표 경선은 부정 방조한 부실선거"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