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의 몽골초원. 사진은 내몽골 초원의 모습.
김종성
다만, 아시아에 알려진 가톨릭은 정통 가톨릭은 아니었다. 콘스탄티노플 대주교 출신인 네스토리우스(?~451?)의 성경 해석을 따르는 교파였던 것이다. 그는 '성모 마리아는 예수 그리스도의 어머니이기는 하지만, 신의 어머니는 아니다'라는 비(非)성모설을 주장했다가 로마 교황청으로부터 이단 판정을 받은 바 있다.
유목민족의 역사에 관한 세계적 권위자인 르네 그루쎄(1885~1952)가 <유라시아 유목제국사>에서 정리한 바에 따르면, 몽골제국 등장 이전에 중국-중앙아시아 접경지대나 몽골초원에서는 전통적인 샤머니즘과 함께 불교·네스토리우스파가 영향력을 행사했다. 16세기 이전만 해도 이 지역이 초원길이나 비단길을 통해 유라시아대륙의 동서 문화교류를 주도적으로 매개했으므로, 이곳이 한반도보다 훨씬 더 빨리 가톨릭을 접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럼, 칭기즈칸이 속한 몽골족은 구체적으로 어떤 신앙을 갖고 있었을까? 몽골초원을 정복하기 이전에, 몽골족은 초원 동쪽에 있는 삼림지대에 살았다. 이들이 유목민으로 전환된 것은 초원에 진입한 이후였다.
몽골초원 주변의 삼림민족이 초원에 진입한 뒤 유목민족으로 전환되었다가, 중국 농경지대에 진입한 뒤에는 농경민족으로 전환되는 것이 동아시아 민족이동의 일반적 패턴이었다. 이런 패턴은 박혁거세 신화나 김수로 신화 같은 한국 고대 신화에서도 곧잘 나타난다.
전통적으로 동아시아 삼림지대에서 가장 강력했던 신앙은 샤머니즘이었다. 고대 한반도에서 무속신앙이 특히 강했던 이유 중 하나도 한반도의 지리적 특성에서 찾을 수 있다. 산악이 많은 지역은 샤머니즘의 전파에 유리한 조건을 갖추고 있었던 것이다.
샤머니즘에서는 천신이 산을 통해 인간 세상에 하강한다고 믿는다. 그래서 산악을 신성시하고 숭배한다. 그렇기 때문에 산악지대 주민들은 샤머니즘을 수용하기가 수월했다. 삼림지대에 살던 당시의 몽골족이 샤머니즘을 숭상한 이유도 그 때문이다.
참고로, 한국의 전설이나 설화에서 산신 할아버지가 자주 등장하는 것이나 오늘날의 무속인들이 수행을 위해 산을 찾는 것이나 한국 사찰에서 산신각을 짓는 것에서도 샤머니즘적인 산악숭배의 잔영을 찾을 수 있다. 한국인들이 전통적으로 등산을 좋아하는 것이 샤머니즘의 영향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몽골족은 본래 샤머니즘을 숭상했지만, 몽골초원에 진입한 뒤부터 새로운 종교와 접촉하기 시작했다. 초원과 그 주변에서 유행하던 불교나 네스토리우스파와 만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이들이 새로운 종교문화에 적응했을 뿐만 아니라 이를 적극 수용하기까지 했다는 점은, 여몽전쟁 중에 벌어진 획기적 사건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티베트불교 힘 빌려 세계정복 정당성 구축하려 하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