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주리 첫 소설, '그리고 사랑은' 표지(2012)
김형순
그림 그리는 사람이 소설을 썼다는 건 분명 외도다. 그런데 황주리는 예외다. 그의 아버지는 단행본, 월간지 등을 내는 큰 출판사를 경영했고, 그의 어머니는 소설지망생이었다. 그는 어려서부터 원고지를 달고 살았다. 그가 초기작을 원고지에 그린 것도 그렇고 소설이 나왔다는 것도 자연스럽다.
황주리는 5살부터 그림을 그렸고 15살부터는 에세이도 썼다. 중고생 시절 에세이가 더 적성에 맞는다는 선생님말씀에 소설은 접었다. 2009년에 웹진을 만나면서 마침내 소설을 토해냈다. 박수근 화백의 아들 박성남 선생은 황주리와 30년 친구인데 전시회에 와서 이 소설을 보고 "원고지에 갇혔던 문자가 폭발했다"고 한마디 던진다.
시서화가 하나인 게 동양전통이지만 황주리에게 글과 그림의 관계는 독립적이면서 상호보완적이다. 러시아 미술이 문학성이 풍부하듯 그의 그림은 시정(詩情)과 서사적 상상력으로 넘친다. 이번 전은 작가의 탯줄 같은 '식물학' 연작에 그동안 써온 아이콘을 맘껏 펼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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