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담중인 하종강 선생님
이차령
하승창 : "두 분은 무엇보다 인간답게 사는 세상, 인간의 존엄을 지키며 살 수 있는 삶에 대해 강조해주셨는데요, 인간의 존엄함에 대한 성찰이 없는 사회에서는 결국 인간을 위한 제도를 기대하기는 어렵겠죠."
하종강 : "현대차 비정규직노동자 중에 한 사람이 분신을 했어요. 다행히 목숨을 건졌고, 병원에서 온몸에 붕대를 퉁퉁 싸매고 누워있을 때 MBC <피디수첩>이 와서 인터뷰를 했어요. 화상으로 퉁퉁 부은 입술로 눈만 빼끔 뚫려있는 상태에서 그분이 하신 말씀이 이겁니다. "똑같은 자동차의 왼쪽은 내가 조립했고 오른쪽은 정규직이 조립했다, 작업지시서도 같고, 작업재료도 같고, 작업도구도 같고 노동량도 똑같은데, 그냥 단지 앞에 '비'자 하나 붙은 거… 비정규직이라는 이름만으로 내가 엄청난 불이익을 받았다. 그래서 내가 분신할 수밖에 없었다, 더 이상 참을 수 없어서…"
이렇게 얘기한 눈물겨운 동영상을 공기업, 금융기관 신입사원 연수에 가서 강의할 때 보여주면요, 몇 백 대 일의 경쟁률을 뚫고 취업했다는 신입사원들 표정이 어떤가 하면, 우리처럼 마음 아파하는 게 아니라, '억울하면 나처럼 공부를 했어야지…' 이런 반응들이에요. '왜 공부 안 하고 있다가 지금 와서 딴소리하는 거야.' 나한테 따지는 사람도 있어요. '평등을 많이 강조하시는데요, 경쟁해야 발전하는 것 아닙니까?' 하고요. 그야말로 지배세력이 만들어낸 욕망의 화신들인 거죠.
또, 마트에서 캐셔로 일하는 서비스 노동자들이 몇 시간 동안 바코드를 찍고 있다 보면 주로 세련된 용모의 젊은 부모들이 바로 앞에서 아이들에게 이렇게 얘기한대요. '너 공부 안하면 나중에 이런 거나 해' 이런 말을 몇 번씩 들어야 한대요. 우리 사회가 사람들을 이렇게 욕망의 화신들로 만들어가는 거지요. 타인의 인권이나 권리에 대해서 전혀 배려하지 못하는 사회로 말이죠. 사회 전체를 변화시키기 위한 노력은 전혀 하지 않으면서, 개인의 스펙을 높임으로써 행복한 삶을 추구하려고 하는, 이건 바람직한 삶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식사할 한 평 공간도 없이 화장실에서 밥을 먹는 청소노동자와 같이 열악한 노동조건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 많이 있다는 것을, 그런 사람들의 경제적 수준이 향상되는 방법을 찾아 함께 사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우리 사회 절대 수준의 행복을 추구하는 데 굉장히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전희식 : "힘들어하고 불행하다고 이렇게 스스로 절망하는 분야는 참 다양한 것 같아요.부모 자식 간의 관계, 부부 간의 문제, 직장 동료와 선후배 문제, 가치와 이익 공동체의 대립 등, 불행의 양상은 다양한 생활부문에 걸쳐서 전면적으로 전 방위적으로 나타나고 있어요. 하지만 대부분의 불행이라고 하는 것의 공통점은 나의 기대와 바람과 현실의 격차로부터 오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우리들 대부분은 진짜 바라지 않는 것까지 욕망하면서, 쓸데없이 씨름하는 경우들도 많거든요. 쟤가 나보다 돈 많이 벌면 어쩌지, 쟤가 배신하면 어쩌지 이런 걸로 씨름한다는 거예요. 그걸 연상할 때가 이미 불안한거지. 어떤 경우에도 불행에 휩싸이지 않고 살아가리라 마음먹었으면 진짜 바라는 바를 향해서만 당당하게 나아가면 됩니다. '기존'과 '기성'에 대한 확인이라고 전 늘 표현하는데요, 이미 있는 것에 대한 소중함과 감사함과 고마움을 충분히 누리는 겁니다. 이런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봐요. 내 속에 있는 억압된 감정들, 또는 왜곡되거나 균열이 일어났던 감정들을 해체하고 순화시키는 작업들 말이죠. 그것부터 좀 풀고, 현실의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거예요."
"한국서 '복지병 해악' 강조, 영양실조 환자에게 다이어트 권하는 것"하승창 : "두 분이 생각하는 행복을 위해 우리에게 꼭 필요한 조건은 무엇입니까?"
하종강 : "우선, 최소한의 생활이 보장되어야 해요. 그런데 한국 사회에서는 이런 복지 이야기를 하면 '친서민'이라고 하는 총리조차 '과잉복지 때문에 알콜중독자가 늘어나고 있다', 이런 얘기나 하고 어제 뉴스를 보니까 어린이집 비용을 지원하는 제도 때문에 여성들의 근로의욕이 감소하고 있다, 이런 자료를 KDI가 냈더라고요.
한국 사회에서 복지병의 해악을 강조하는 것은 영양실조에 걸린 사람에게 다이어트가 좋다고 권하는 거나 마찬가지예요. 복지가 어떻게 하면 가능하겠느냐, 쉽게 말하면 부자들의 주머니에서 그 돈이 나올 수 있다는 거거든요. 핀란드 노키아의 부회장이 10년쯤 전에 오토바이를 타고 단 한 번 과속했다가 1억 3000만 원의 범칙금을 낸 적이 있는데 2년쯤 전에 그 기록이 깨졌어요. 스위스에서 어느 부자가 한번 과속했다가 3억 2000만 원의 벌금을 냈거든요.
이런 법을 갖고 있는 나라들이 의외로 많아요. 재산과 수입에 따라서 벌금을 부여하는. 꼭 그 정도 수준은 아니더라도 사회복지를 이야기 하는 목적이 일하지 않고도 먹고 살 수 있는 사람들을 만들어 보자는 것이 아니라 자살을 선택하는 노동자가 없게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노동자의 삶의 질이 개선되는 것이 사회가 발전하는 방향이고, 이게 진보하는 사회라는 인식이 우리는 다른 사회보다 너무 취약한데 이러한 문제에 대한 공감대가 좀 넓혀졌으면 좋겠어요."
전희식 : "최소한의 삶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것은 전적으로 동의를 하지만, 욕망이 충족되면 행복하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봅니다. 허황된 거품이 내 삶에 끼어들어서 그것에 끊임없이 휘청거리는 걸 먼저 걷어내야 합니다. 전 우리 문명이 '자해 문명'이라고 봅니다. 물질과 기술에 속박되어 인간 본래의 능력과 감각은 퇴화되고, 지구생태계는 절단나고…. 지금은 미래로 가는 뒷걸음질, 즉 지속가능한 후퇴가 필요합니다.
어렵다고 힘들다고 생각되는 삶은 우리가 그렇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쉬는 시간이 없고, 잔업 시간이 많고, 휴일이 없으면 불행해야만 한다는 등치를 하지는 말자는 것이죠. 불행할 수는 있어요. 그러면 불행하다고 여겨지는 삶에서 신속히 뒷걸음질 치는 거예요. 불행에 대한 간단한 퇴치 요법이라고나 할까요, 모든 상황으로부터 내가 매몰되지 않으면, 내가 처한 상황에 대한 객관적인 시선이 확보가 되거든요. 즉, 그 상황을 읽게 되고, 그 상황에 대해 활력 있게 대응할 수 있어요. 예를 들어 '파업이 몇 일째인데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아서 정말 막막하다' 이렇게 자기 현실을 자기가 떠오르는 대로 복기를 하고 나서 여기에 대해 난 '~라고 생각한다'라고 적는 거예요. 안 좋은 것이든 좋은 것이든 다 적는 거예요. 그렇게 하는 순간 탁 분리가 되요. 내가 처한 현실과 그 처한 현실이 나라는 존재의 다가 아니라는 것을. 내가 그때 직면한 상황이, 그 상황 속에 함몰된 내가 나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지혜롭게 분리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요즘 우리 사회는 성공이 아닌 행복을 추구하자는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그만큼 많은 이들이 삶에 피로를 느낀다는 방증이며, 복지와 평화, 공존에 대한 위기위식이 커졌기 때문이겠죠. 이러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인생의 진짜 공부를 학교가 아닌 현장에서 하셨던 두 분은 모시고 우리 사회 불행의 원인과 행복한 삶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습니다.
서로가 살아온 궤적은 다르지만 자기가 진정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 성공이요 보람이며, 더불어 사는 삶이 아름답다는 진리를 온몸으로 살아내시는 두 분을 보며 행복의 참다운 의미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보고 느낄 수 있었던 귀한 시간들이었습니다.
덧붙이는 글 | 씽크카페컨퍼런스 홈페이지(thinkcafe.org)에도 실립니다. 이 기사는 4번의 시리즈로 이어집니다. 첫 번째 기사이며 2~3일 간격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