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산 노동자들이 “정리해고 없는 세상! 비정규직 없는 세상! 재벌특혜 없는 세상!” 몸자보를 두르고 김천시내를 걷고 있다.
노동과세계 윤성희
부산 반여동에 있는 풍산그룹 계열사 (주)PSMC(구 풍산마이크로텍)가 2011년 11월 7일 노동자 58명을 정리해고했다. 노동자들은 공장 입구 주차장에 천막을 쳤고, 풍산그룹 본사가 있는 서울과 부산시내 전역에서 노숙을 하며 8개월째 복직투쟁을 벌이고 있다. 부산지노위는 지난 2월 "해고가 부당하다"며 지회 조합원 51명과 비조합원 1명 등 노동자 52명의 복직을 명령했다. 책임이 있는 풍산그룹은 모른체 하고 (주)PSMC는 지노위 명령을 거부한다. 해고자 16명, 비해고자 25명 등 풍산마이크로텍 노동자 41명이 지난달 30일 '정리해고 없는 세상! 비정규직 없는 세상! 재벌특혜 없는 세상! 금속노조 풍산노동자 희망국토대장정'을 시작했다. <노동과세계>가 희망국토대장정 15일째인 13일 풍산노동자들 대장정 일정을 함께 했다. <기자의 말>
금속노조 부산양산지부 풍산마이크로텍지회 해고자와 비해고자들의 희망국토대행진을 만나러 달려갔다. 기자가 서울에서 기차를 타고 오전 9시30분 경 김천역에 도착했다. 정홍형 금속노조 부양지부 조직부장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강변조각공원에서 쉬고 영남제1문 쪽으로 걷고 있다고 했다. 택시를 타고 빨리 그 곳으로 데려다 달라고 했다.
오전 10시 가까운 시각 "정리해고 없는 세상! 비정규직 없는 세상! 재벌특혜 없는 세상!"이라고 적힌 몸자보를 앞뒤로 두른 풍산 노동자들이 걷고 있었다.
맨 먼저 만난 노동자가 "어서 오이소~" 하며 반갑게 인사를 건넨다.
누군지도 묻지 않고 대뜸 손부터 내민다. 이강문 풍산마이크로텍지회 조사통계부장(51). 조합원들 발과 건강 상태가 어떤지를 먼저 물었다.
"41명 중에 10명 정도만 제외하고 나머지는 모두 물집 때문에 고생하고 있어요. 신발이랑 몸 상태, 걷는 방법 등에 따라서 다른 것 같아요. 물집이 심한 사람은 우리가 우스개로 발에 실로 수를 놓는다꼬 해요. 이따 보세요. 하하하~"풍산노동자들은 지난 12일 구미에서 KEC지회 조합원들을 만나 선전전도 하고 KEC와 풍산상황을 공유했다. "어제 KEC 동지들이 절반 정도 같이 걷다가 돌아갔어요. 아이고~ KEC도 정리해고는 일단 철회했다 카는데, 들어가도 또 투쟁해야겠더라고요."
(주)PSMC 즉, 풍산마이크로텍의 최근 상황이 어떤지를 물어봤다.
"회사가 임금을 30% 삭감하고, 퇴직금을 반환하면 복직시키겠다 카는데 말이 안되잖아요. 부산시에서 압력을 넣어 이번주에 실무교섭이 될 듯도 싶은데... 우리는 강대균 회장이 나오면 부양지부장이랑 지회장이랑 들어가 교섭할 겁니다. 지난해 11월부터 4월까지 매주 교섭은 했지만 계속 결렬됐어요."풍산마이크로텍은 1991년 풍산금속 동래공장 생산부에서 풍산정밀로 분사, 2000년 풍산마이크로텍으로 상호를 변경했다. 이 회사는 1985년 리드프레임 사업을 시작해 비철금속 중 동(銅) 사업 주력그룹인 풍산그룹 일원으로 그룹의 반도체 부품산업을 맡아왔다.
풍산그룹은 생산물량이 없다며 노동자들에게 연원차 휴가를 쓰게 해놓고 2010년 12월29일 지회와 협의도 없이 풍산마이크로텍 주식지분 57.2%를 240억에 매각했다. 고용불안과 퇴직금 정산 등 위기를 느낀 노동자들이 대거 금속노조에 가입했고 지회 규모는 186명이 됐다. 지회는 이때부터 고용승계, 노조와 단체협약 승계, 70억원에 이르는 퇴직금 중간정산 확보 등을 요구했다.
회사는 지난해 3월 주주총회를 열어 풍산마이크로텍 이름을 (주)PSMC로 바꾸고 노조의 요구를 받아들이겠다고 했다. 그러나 4월이 되자 '유상증자' 운운하며 "임금을 삭감해 흑자를 만들고 유상증자를 해서 회사를 살리자"고 주장했다. 지회는 회사가 추진하는 정리해고 철회와 성실한 교섭 등을 촉구했지만 회사는 계속해서 억지주장을 밀어붙였고 급기야 지난해 말 정리해고를 강행했다.
풍산마이크로텍지회 해고자 51명, 비해고자 51명 등 총 102명은 지난해 11월 2일 정리해고에 저항해 파업에 들어가 6월 13일 현재 225일째 파업투쟁을 전개하고 있다. 서울 풍산그룹 본사 앞과 부산시청, 노동청 앞에서 노숙투쟁을 벌이고 있으며 41명이 자원해 지난달 30일 희망국토대장정을 시작했다.
"해고자들이 퇴직금을 받아 100만 원을 투쟁기금으로 내고, 100만 원씩 걷어 비해고자들 급여를 지원했어요. 실업급여를 받아서 1/N로 나눠 최소한의 생계를 잇고 있지요. 우리는 해고자, 비해고자 그런 구분 없이 같이 싸웁니다."국토대장정 15일차, 조합원들 몸 상태가 걱정됐다.
"말로 다 어떻게 하겠습니까? 온몸이 다 아프지요. 아프니까 짜증도 나고. 그래도 서로들 양보를 많이 해요. 동생들이 '나이 많은 형들은 가만 계이소' 하고 뭘 갖다주기도 하고, 힘든 일은 다 동생들이 해줘요. 그러니까 투쟁력도 더 올라가구요. 힘든 투쟁이라고 '우리가 왜 이런 걸 해야 하나' 하면서도 이렇게라도 해야 자본이 경각심을 갖는다고 하죠. 그런 마음으로 출발했고 그런 마음으로 여기까지 왔어요."
풍산마이크로텍지회 희망국토대장정단 41명을 5명씩 8개 조로 편성해서 조장들을 중심으로 조원들을 늘 체크하고 걷는 모습을 살피며 필요한 경우 병원 치료 등을 받게 한다. 민주노총 부산지역본부 승합차와 서울지역본부 트럭을 빌려서 개조해 사용하고 있다.
"식사는 어떻게 해결하세요? 세 끼 잘 잡수셔야 할텐데요.""취사 당번 한 명이 민주노총 서울본부 트럭을 개조해서 그 차량을 갖고 다니며 밥이랑 반찬을 그때그때 만들어요. 길거리에서 식재료를 사서 밥을 짓고 행진단이 밥 먹을 만한 장소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먹이죠."풍산마이크로텍지회 희망국토대장정단은 기본적으로 숙박과 식사를 모두 거리에서 해결한다. 식사도 길거리에서 하고, 숙박도 장소를 확인해 1인용 텐트를 치고 잔다.
"차출이 아니고 전부가 스스로 지원해서 하는 거니까 모두 웃으며 완주하자고 합니다. 그렇게 투쟁에 보탬이 되자고 해요. 한편으로는 마음이 아프고 서글프기도 하고 그래요. 우리 투쟁을 반드시 이겨야 하는데 안 해보고 후회하는 것보다 무조건 뭐든 해야죠. 자본은 저래 지들끼리 잘 뭉치는데 왜 노동자는 뭉치지를 못하는가? 우리가 (노동자 단결투쟁에) 초석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합니다."오전 10시20분 경 영남제1문에 도착해 잠시 쉬었다. 조합원들은 저마다 자리를 잡고 앉아 신발과 양말부터 벗는다. 몇몇 조합원이 기자에게 한 사람을 가리킨다. "저 사람 발 쫌 가서 보이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