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가 급한데 '수술거부'? 이건 아니죠

[주장] 수익 운운하는 정부와 의사단체... 환자는 답답하다

등록 2012.06.14 21:51수정 2012.06.15 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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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산청 처가에 들렀을 때였다. 오랜만에 뵙는 장인어른의 눈이 심상치 않아 보였다. 눈동자는 혼탁했으며 계속 눈물을 흘리고 계셨다. 화들짝 놀라 연유를 여쭤보니 장인어른은 담담하게 '백내장'이라고 말씀하셨다. 이어 장인어른은 "나이가 들면 흰 머리가 나는 것과 비슷한 것이니 너무 놀랄 필요는 없다"며 "6월에 수술하기로 했다"고 하셨다.

 

수술하면 별일이야 있겠나. 한시름 놓고 서울로 올라왔는데 며칠 뒤 텔레비전에서 백내장 수술과 관련한 뉴스를 접하게 됐다. 정부가 7월부터 포괄수가제를 실시하는데, 백내장 수술이 그 범위에 포함되고, 그렇게 되면 지금보다 진료비가 한층 저렴해진다는 것이었다.

 

뜬금없는 소식... '의사들의 수술 거부'

 

 지난 13일 대한의사협회 누리집에 올라온 보도자료.
지난 13일 대한의사협회 누리집에 올라온 보도자료.대한의사협회 갈무리
지난 13일 대한의사협회 누리집에 올라온 보도자료. ⓒ 대한의사협회 갈무리

아내는 당장 장모님께 전화를 걸어 포괄수가제에 대한 정보를 알렸지만, 산청에서는 수술 날짜를 미룰 생각은 없다고 말씀하셨다. 그래 봤자 얼마 차이도 나지 않을뿐더러, 서둘러 수술을 해서 하루라도 빨리 눈이 편한 게 우선이라는 것이었다. 자식의 입장에서 당신의 뜻을 따를 수밖에.

 

그런데 문제는 이후 불거졌다. 6월이 돼 아내와 함께 장인어른의 수술 소식을 기다리고 있는데, 뉴스에서 대뜸 이상한 소식을 들었다. 다른 의사회와 발맞춰 안과 의사회에서도 포괄수가제 강제도입에 맞서 백내장 수술을 거부하겠다는 것이었다. 이건 또 무슨 일인가.

 

당장 산청에 전화를 걸어 수술에는 지장이 없는지 여쭤봤다. 다행히 장인어른의 수술은 그대로 진행된다고 했다. 인공수정체가 튀어나올 수도 있으니 넘어지지 말라는 주의가 조금 마음에 걸렸지만, 좋아하시던 술과 담배를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경고 역시 거슬리기도 했지만, 어쨌든 장인어른의 수술은 예정일에 맞춰 진행된다는 것이었다.

 

장모님께서는 수술 소식에 덧붙여 이번 포괄수가제와 관련해 의사와 주고받은 이야기를 전하셨다. 나는 그 이야기를 듣고 나서 고개를 갸우뚱할 수밖에 없었다.

 

의사의 이야기인즉슨, 이번 포괄수가제 적용은 분명히 잘못된 정책이라는 것. 예컨대 백내장 수술의 경우, 포괄수가제가 시행되면 백내장 수술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인공수정체는 기존보다 싼 중국제가 들어갈 것이며, 궁극적으로는 국내에서 백내장 수술이 사라질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었다.

 

한심했다. 아픈 이를 볼모로 '수익'을 이야기한다는 것 자체가 어처구니 없는 일이었다. 그들은 과연 의사가 되면서 행했던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기억하고는 있는지. 그래서 수술을 할 수 없다면, 그래서 질이 떨어지는 인공수정체를 쓸 수 없다면 도대체 뭐 어쩌라는 것인지.

 

'저질' 의료서비스를 원하는 환자는 없다

 

 환자들은 병원의 불필요한 진료행위도 원치 않지만, 그렇다고 낮은 수준의 의료 서비스도 원치 않는다.
환자들은 병원의 불필요한 진료행위도 원치 않지만, 그렇다고 낮은 수준의 의료 서비스도 원치 않는다.Wikimedia commons
환자들은 병원의 불필요한 진료행위도 원치 않지만, 그렇다고 낮은 수준의 의료 서비스도 원치 않는다. ⓒ Wikimedia commons

최근 불거지고 있는 포괄수가제 문제는 잠재적 소비자 혹은 잠재적 환자의 입장으로서 결코 유쾌하지 않은 논란이다. 포괄수가제를 밀어붙이는 정부나 그에 대해 거부하고 있는 의사협회 모두 일정 부분의 진실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정부의 논리를 살펴보자. 정부는 포괄수가제를 시행해야 하는 이유로 과도한 진료비를 근거로 꼽는다. 각 병원들이 수익을 남기기 위해 불필요한 검사 등을 소비자에게 남발함으로써 가계 부담이 증가하는데, 포괄수가제는 총 진료비가 미리 책정돼 있어 불필요한 진료행위와 진료비 부담을 덜 수 있다는 것이다.

 

반면, 포괄수가제에 반대하는 의료계는 이런 포괄수가제가 의료 서비스의 질을 떨어뜨릴 것이라고 주장한다. 환자의 상태와 상관없이 진료비가 이미 확정돼 있다면, 의사들은 그 안에서 최대의 수익을 내려 할 것이 뻔한 바, 그렇게 되면 질이 낮은 제품을 쓰는 등 서비스의 질이 낮아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양측의 논리를 듣다 보면 소비자는 당연히 갈등할 수밖에 없다. 우리 모두는 좀 더 싼 가격으로 양질의 서비스를 받고 싶기 때문이다. 병원의 불필요한 진료행위도 원치 않지만, 그렇다고 낮은 수준의 의료 서비스도 원치 않는 사람들. 과연 이 두 관점을 절충시킬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

 

포괄수가제 논란, 전제부터 문제있네

 

이와 관련해 우리가 주의 깊게 살펴봐야 할 것은 두 관점 모두 같은 전제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정부나 의료계 모두 병원과 의사를 수익을 내고자 하는 주체로 상정하고 있는 것이다. 어떻게든 돈을 벌기 위해 불필요한 진료행위를 하고, 가장 낮은 단가의 의료기기를 써서라도 자신의 이익을 챙기는 것이 당연하다는 가정이 숨어 있다. 결국 이 전제 하에서는 앞서 정리한 갈등이 항상 존재할 것이다. 병원과 의사가 환자의 생명보다 돈을 우선으로 둘 경우, 이는 구조적인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번 문제를 사회적으로 해결해감에 있어서 그 전제 조건 역시 생각해봐야 한다. 이 모든 갈등의 원천이 의료업을 돈벌이로 생각하는 인식에서 기인한다면 그 인식을 바꿀 수 있는 제도적인 장치들을 고려해야 한다. 예컨대 의사의 고수익이 의사가 되기 전까지 지불된 투자비용 때문이라면 사회적으로 의사 되는 데 필요한 돈을 줄이는 방법까지 생각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우리 모두는 돈을 많이 벌고자 하는 의사보다 환자를 진심으로 걱정하는 의사를 원한다. 돈을 많이 받지 않아도 아픈 사람들을 위해 기꺼이 자신을 희생할 수 있는 의사를 위인전이 아닌 현실에서 보고 싶다. 모든 사회 구성원들이 이처럼 한 가지 사실을 원한다면 실현할 수 있지 않을까. 무엇 때문에 우리는 그런 논의조차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부디 이번 포괄수가제 문제가 무난하게 해결되기를 바란다. 아무리 자신의 생각과 다르다고 하더라도 아픈 사람을 볼모로 자신의 욕심을 채우는 것은 아니다. 정부와 의료계 모두 돈이 아닌 사람을 중심에 두고 논의를 하되, 장기적으로 좀 더 나은 의료 서비스를 위한 고민도 함께하길 바란다.

#포괄수가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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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물류와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을 했었고, 2022년 강동구의회 의원이 되었습니다. 일상의 정치, 정치의 일상화를 꿈꾸는 17년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하여 제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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