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비(Abbi)와 에반(Evan) 커플서쪽에서 출발한 이들은 앞으로 3일 후면 버지니아주 요크타운에 도착한다.
최성규
짧은 만남 후 방향은 엇갈린다. 서진을 계속하면서 오후 3시경 샬로츠빌에 도착. 24km 떨어진 화이트홀(White hall)까지 밟아볼까 했지만, 다리는 피로로 천근만근이다. 이럴 때는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를 해야 한다. 횡단 여행은 극기 훈련이 아니다. 장거리 마라톤이다. 멀리 내다보지 않으면 골골 대며 요양할지도 모른다.
3년 1개월간의 공중보건의 시절. 명상에서 자주 떠올리던 화두가 있었다. 일체의 괴로움은 집착에서 나온다. 물질에 대한 집착, 욕망에 대한 갈구. 놓치지 않기 위해 꽉 움켜쥘수록 손은 더 아파온다. 설령 80일 안에 도착하지 못하면 어떠리. 미국 방방곳곳에 흔적을 남기면서 집착 또한 바닥에 놓아보려 한다. 정신적인 무소유.
2012년 5월 26일(토)Charlottesville, VA 눈을 뜨니 아늑한 방 안이다. 보통 때라면 좁다란 텐트에서 무거운 몸을 일으켜야 할 처지다. 우연이란 흔치 않지만 이번 여행길은 뭔가 오묘하다. 더글러스 아저씨가 말했듯이 누군가와 같은 시간을 공유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샬로츠빌은 명색이 도시라 캠핑을 함부로 할 수 없었다. 지나던 경찰관이 단속이 없는 공원을 알려줘서 가던 중이었다.
"맥거피(Mcguffey) 공원이 어디죠?""저기야. 텐트 치기에는 좀 그렇겠는데.""그러면 뒷마당 좀 빌려주면 안 될까요?"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 한 마디. 브레비 캐논(brevy cannon)과의 만남은 그렇게 시작됐다. 누구와 만나든지 '오호'라는 감탄사를 연발하며 경청하는 그는 무슨 일을 하든 상대방에게 선택권을 줬다. 나와의 첫 만남도 예외는 아니었다.
"먼저 가서 텐트를 칠래, 아니면 같이 파티에 갈래?"여행 초반 여러 우여곡절을 거치며 배운 게 있다면 '기회는 무조건 잡고 보라'는 것. 물으나마나 답은 하나. 불이 훤한 채 왁자지껄한 소리가 들리는 전원 주택. 자전거 레이서인 친구의 생일 파티다. 미국 횡단에 도전하는 친구를 데려 왔다는 말에 여기저기서 반갑게 인사를 한다. 벽에 붙은 맥주 꼭지에서 황금 빛깔 액체가 흘러나오는, 달콤한 음식이 그득한 천국.
만국공통어인 음담패설에 웃고, 음악에 신명이 난 주인공의 막춤에 긴장이 풀린다. 랜스 암스트롱(Lance Armstrong)과 자전거 경주에 참여한 적이 있다는 생일 주인공 이안 아이어스(Ian Ayers)와 자전거 샵 매니저가 한 자리에 모여 있어 자전거 정비에 귀한 정보까지 얻는다.
집으로 돌아온 브레비. 야영이 무슨 말이냐며 침실 하나를 빌려준다. 그렇게 융숭한 대접을 받고 일어난 아침. 이틀 동안 4번이나 타이어 펑크가 났다는 얘기를 들은 브레비가 단골 자전거 가게로 나를 데려갔다.
"타이어에는 이상이 없네요."튜브 밸브와 림 홀 사이에 유격이 생기면 고정력이 약해 펑크의 원인이 된다는 매니저의 설명. 타이어 공기압이 약해도 문제다. 하중을 견디지 못하고 눌리면서 림에 튜브가 끼게 되면 스네이크 바이트(snake bite)라고 해 뱀이 이빨로 깨물 듯이 인접한 두 군데가 찢긴다. 여러 정황을 고려해 볼 때 타이어 자체를 교환하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