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카드
오마이뉴스 자료사진
"아! 나 저 구두(사실 신발, 옷, 자동차, 컴퓨터, 뭐든 상관없다) 사고 싶은데. 너무 비싸네? 당장 돈이 없는데 어떻게 하지?""무엇을 고민하십니까? 신용카드로 구매하세요. 12개월 할부로 구매하시면 매달 조금씩만 내셔도 되잖아요.""에잇! 그래, 긁자 긁어."
신기하죠? 당장 돈이 없어도 원하는 바로 그 물건이 내 것이 됩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신용카드는 미래의 수입을 저당 잡혀서 현재의 소비로 바꿔줄 수 있는 수단입니다. 그런데 미래의 수입이란 다른 말로 표현하면 미래의 '시간'입니다. 미래에 돈을 벌려면 내 시간을 써야 할 테니까요.
그래서 정신줄 놓고 신나게 긁어대다가는 카드빚 때문에 인생이 상당히 고달파지기도 하지요. 미래의 시간 대부분을 카드빚을 갚는데 쓰게 생겼는데, 결국 빚의 노예로 살아야하는 셈이니까요. 한마디로 신용카드는 결국 미래의 인생을 팔아 현재의 소비로 바꾸는 것입니다.
그런 이유로 신용카드 할부 구매 내역을 보면 그 사람의 인생관과 가치관을 알 수 있습니다. 미래의 인생을 저당 잡혀서까지 구매하고 싶은 상품이라면 그 사람이 매우 원하는 것일 테고, 그 상품을 그렇게까지 원하는 이유는 해당 상품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그 무엇인가가 자신이 추구하는 인생과 가치에 부합하기 때문일 겁니다.
예를 들어 왕년의 농구 스타 우지원씨의 아내인 이교영씨는 SBS <스타부부쇼 자기야>에 나와서 남편 우지원과 연애시절 선물을 사느라 카드빚을 지고 돌려막기까지 한 사연을 얘기했습니다. 이교영씨의 어머니는 카드명세표를 보고 '남자한테 미쳐서 카드빚까지 지냐'고 야단을 쳤다는데요. 당시 이교영씨는 농구스타 우지원과의 연애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기 때문에 미래의 인생을 저당 잡히면서까지 선물을 한 것이죠. 어쨌든 두 분이 결혼을 했으니 카드빚을 통한 연애전술은 성공한 셈입니다.
미래의 인생을 팔아 현재의 소비로 바꾸는 신용카드 저는 트위터의 자기소개, 그리고 블로그 제목 등에 '카드 할부로 떠나는 여행'이라고 적어놨습니다. 간혹 제 트위터나 블로그를 방문했다가 '카드 할부로 떠나는 여행'이라는 문구를 보고 '인생을 카드 할부로 떠나는 여행에 비유했나요? 멋지네요'라는 반응을 보이는 분들이 있습니다. 뭔가 문학적이고 은유적인 멋있는 표현이라고 생각하시는 거죠.
그런데 제가 '카드 할부로 떠나는 여행'이라고 적어놓은 이유는 제가 정말로 여행을 카드 할부로 다니기 때문입니다. 무슨 문학적 비유나 은유가 아니라 팩트 그 자체를 써 놓은 것이죠. 제가 가끔 강연에서 이 얘기를 하면 청중들이 유쾌하게 웃습니다. 무슨 여행을 카드 할부로 다니느냐며 말이죠. 그러면 저는 솔직히 이렇게 되묻고 싶어집니다.
'그러면 어떻게 카드 할부로 자동차나 옷, 가구 같은 것을 살 수가 있죠?'카드 할부로 여행을 떠난다는 것은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는 여행을 일시불로 갈 수 있을 만큼 벌이가 넉넉하지는 않다는 뜻입니다. 둘째는 미래의 인생을 저당 잡혀 떠날 만큼 여행을 소중하게 생각한다는 뜻입니다.
카드 할부로 떠난 첫 번째 여행지는 오스트리아와 체코였습니다. 자초지종은 이렇습니다. 때는 2009년, 기자였던 아내가 다니던 신문사를 그만두고 전업 작가를 선언하면서 저에게 통보했습니다. 퇴직금을 가지고 해외여행을 가겠다고 말이죠. 그래서 저는 단서조항을 달았습니다. 나를 데려가면 동의하겠다고 말이죠.
그래서 함께 오스트리아와 체코에 가기로 결정했는데 빠듯한 기자 월급 덕택에 안 그래도 적은 퇴직금의 절반이 여행경비로 날아가게 됐습니다. 퇴직금도 생활비로 이용해야 하는 헉헉대는 살림살이인데 그렇게 큰 목돈이 당장 없어지면 가계에 타격이 크기 때문에, 결국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6개월 카드 할부 결제를 했지요.
카드 할부의 힘을 빌려 떠난 유럽... 그곳에서 받은 충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