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 플레이. 안드로이드를 위한 콘텐츠 유통 마켓인 구글 플레이에는 다양한 소프트웨어와 콘텐츠가 유통됩니다. 개방 정책을 취하는 안드로이드에서 통신사들은 독자 마켓을 제공하고 있지만 전세계 사용자를 대상으로 하는 안드로이드 마켓에 비해 경쟁력을 가질 수 없습니다.
google 캡쳐
하지만 이런 상황을 한 번에 바꾸어버린 혁명적인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어느 날 문득 애플의 CEO 스티브 잡스가 뒷주머니에서 새로운 제품을 꺼내 보였습니다. 애플사의 '아이폰(iPhone)'이 등장한 것입니다.
아이폰은 수많은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아이폰 때문에 PC시대가 저물고 모바일 시대가 열렸습니다. 마우스 기반의 그래픽 인터페이스는 손가락을 사용한 멀티터치 인터페이스로 대체되었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윈도우-인터넷 익스플로러-액티브엑스'에 종속된 한국 인터넷 환경에도 일대 변화의 바람이 불었습니다. 특히 문제 많은 한국식 보안 방식의 허구성이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모바일 시대로 전환되면서 카카오톡과 같은 새로운 기업들이 성장할 기회가 생긴 반면 기존 기업들은 생존의 위협에 시달리게 되었습니다.
그 중 가장 큰 타격을 받은 곳이 통신사들입니다. 아이폰으로 인해 통신사들은 갑의 위치에서 내려왔을 뿐 아니라 거의 모든 영역을 플랫폼 업체들에게 뺏기고 말았습니다. 뛰어난 성능과 매력적인 디자인으로 무장한 완성도 높은 아이폰에, 사용자들은 절대적인 지지를 보냈습니다. 아이폰을 사용하기 위해 통신사까지 바꾸는 사용자들이 많아졌습니다. 결국 거의 모든 통신사들이 애플에 굴복하고 말았습니다.
잡스는 아이폰에 대한 간섭을 완벽하게 막아냈습니다. 통신사들은 아이폰에 자사 로고조차 새길 수 없었습니다. 통신사들은 자사 소프트웨어를 미리 적재하거나 독자 콘텐츠 플랫폼을 제공할 수도 없었습니다. 이 모든 것은 애플의 차지가 되었습니다. 애플은 창작자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았습니다. 게임 등 다양한 소프트웨어 판매망인 앱스토어, 콘텐츠 유통망인 아이튠스 스토어와 북스토어는 통신사의 유통 채널과 달리 합리적인 수수료 정책을 취했기 때문입니다.
사용자 편의성도 극대화 되었습니다. 무선 랜이 기본 장착되었고 이어폰 잭도 표준 형식이 채택됐습니다. 무선 랜으로도 사용 가능했기 때문에 소프트웨어 가격과 별도로 다운로드 받을 때 네트워크 사용료를 낼 필요도 없었습니다.
안드로이드 OS를 사용한 제품들도 쏟아져 나왔습니다. 아이폰 덕분에 안드로이드 제품도 통신사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었습니다. 이제 모든 부가가치는 애플, 구글, 삼성과 같은 스마트폰 제조사와 플랫폼 업체들 그리고 콘텐츠 제작자들의 차지가 되었습니다. 한국에서도 통신사 위주의 콘텐츠 유통망은 점차 입지가 줄어들고 있는 중입니다.
통신사들에게 점점 불리한 상황... '망중립성 확립' 시급아이폰의 등장 이후 통신사에 대한 위기론이 커졌습니다. 통신사 고유 영역이라고 생각했던 문자메시지 시장뿐만 아니라 음성 통화 시장도 뺏길 것이란 예측도 그동안 많았습니다. 하지만 통신사들은 혁신을 통해 위기를 헤쳐 나가기보다는 기득권을 지킬 수 있는 정책을 선호했습니다. 그럼에도 상황은 점점 더 통신사에게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여태까지 통신사들은 단말기 유통도 독점했습니다. 통신사가 정한 단말기만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제품 원가를 부풀린 다음 할인을 대가로 약정을 요구하여 사용자를 2년 이상 묶어 두었습니다. 중간에 이탈할 경우 부풀린 제품 가격을 모두 받아냈기 때문에 사용자는 함부로 계약을 파기하기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단말기 블랙리스트 제도 등 소비자 위주의 정책이 생기면서 이제 원하는 제품을 자유롭게 구입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마음에 드는 휴대폰을 산 다음 가장 사용료가 싼 통신사에 가입을 하면 됩니다. 이렇게 단말기 제조사들끼리 경쟁을 하게 되면 성능이 우수한 제품이 많아지게 되고 유통업체들이 서로 경쟁하게 되면 가격도 하락할 것입니다.
이동통신재판매(MVNO)업체도 활성화 되는 중입니다. 이들은 통신사의 통신망을 도매가로 구입해 사용자들에게 재판매하고 있습니다. 기본료도 없고 음성 통화 시간 구입을 강제 하지도 않습니다. 이동통신재판매 업체의 고객들이 음성 통화를 줄이고 문자를 카카오톡 같은 모바일 메신저로 대체한다면, 통신사의 재판매 수익도 줄어들게 됩니다.
애플의 아이메시지는 아예 통신사의 문자 프로그램을 대체했습니다. 아이폰으로 문자를 보내면 상대편이 아이폰일 경우 애플이 공짜로 문자를 보내줍니다. 이제 통신사들은 아이폰 사용자들한테서 문자 수익을 얻을 수 없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통신사들은 애플에게 한마디도 하지 못했습니다.
다만 한국 기업인 카카오톡만 견제하고 있는 중입니다. 애플의 페이스타임, 구글 보이스, 네이버 라인의 음성 통화 기능이 점점 더 많은 사용자를 모으고 있습니다. 구글이 10억 사용자를 모으고 페이스북이 20억, 카카오톡이 7억 사용자들을 모으게 되면 거의 모든 통화는 이런 앱으로 공짜로 해결할 수 있습니다. 만약 이 업체들이 음성 통화 기능을 서로 연동시킨다면 거대한 사이버 통신망이 만들어질 수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초당 사용료를 내야 하는 통신사 음성 통화 기능은 아무도 쓰지 않게 될 것입니다. 통신사는 콘텐츠, 플랫폼, 단말기에 대한 지배력을 상실했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물리망입니다.
이제 통신사들의 물리망을 통한 경쟁력 확보는 불가능해졌습니다. 사용자들은 더 이상 네트워크 종류에 관심을 가지지 않습니다. 자신이 주로 쓰는 카카오톡이 되는지가 중요할 뿐입니다. 모바일 인터넷 전화가 대중화되면, 구글 보이스나 네이버 라인의 음성 통화가 가능한 어떤 휴대폰이라도 상관없다고 말하게 될 것입니다.
전화번호도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현재 스마트폰 사용자들은 전화번호를 기억하지 않고 사용자 이름으로 전화를 겁니다. 이처럼 모바일 인터넷 전화가 대중화되면 트위터 아이디, 이메일 주소 또는 포털사이트 아이디로도 전화를 걸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말해주는 것은, 물리망 위주의 통신사가 경쟁력을 상실하고 플랫폼 업체들이 주도권을 쥐게 될 것이란 점입니다. 하지만 통신사들은 아직도 물리망을 통한 경쟁력 확보가 가능할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차세대 이동통신인 LTE 구축에 경쟁적으로 나서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결과는 통신사가 바라는 대로 되진 않을 것입니다. 4G 시대에는 통신사의 음성 통화 기능과 모바일 인터넷 전화를 구별할 수 없습니다. 이 둘은 기능적으로 차이가 없는 기술이기 때문입니다. 통신사 음성 통화 기능을 차별화하게 되면 망중립성 위반이 됩니다. 통신사가 4G에서 자사 전용의 음성 통화 기능만 허용할 경우 전 세계적인 저항을 받게 될 것입니다.
결국 합리적인 의사 결정 구조를 갖춘 국가부터 모바일 인터넷 전화가 허용될 것입니다. 그런 나라의 앱들만 국제 경쟁력을 갖추고 세계적인 사이버 통신 프로그램으로 성장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합니다. 한국이 하루빨리 망중립성을 확립 하지 못한다면, 모바일 인터넷 전화의 경쟁력을 확보하기는커녕 국내 음성 통화 시장마저 외국에 내주게 될 것으로 우려됩니다.
한국 인터넷 기업들의 경쟁력 떨어뜨리는 '은폐된 종량제'한국은 아직 하드웨어 제조에 경쟁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또한 극심한 경쟁 속에서 수익이 줄어들 것은 분명합니다. 미래에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은 콘텐츠 유통망을 장악한 플랫폼 업체들뿐입니다. 하지만 통신사는 이런 현실을 부정하고 계속해서 물리망 우선 정책을 고집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망중립성 원칙이 훼손되고 있습니다.
망중립성이란 네트워크 사업자들이 인터넷 서비스에 간섭하거나 차별하지 않고 중립적으로 대우해야 한다는 원칙을 말합니다. 포털의 서비스는 속도를 높여 주고 중소 인터넷 업체는 느린 속도만을 제공한다면 망중립성 위반이 됩니다. 마찬가지로 카카오톡과 같은 모바일 메신저가 통신사 문자 수익을 침해할 우려가 있다고 해서 차별해선 안 됩니다. 불법이 아니라면 인터넷을 통한 어떤 서비스도 동등한 대우를 받아야 합니다.
모바일 인터넷 전화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서비스에 또 다른 요금을 부가하는 것은 망중립성을 훼손하는 행위입니다. 서비스를 검열하고 차별하게 되면 중소기업들의 좋은 아이디어가 성공하기 어렵게 됩니다. 어떤 아이디어든지 장려하고 발전시켜 파이를 키운 다음 수익을 나누어야 합니다. 기존 시장에 피해를 준다고 새로운 서비스를 금지하게 되면 국가 경쟁력이 상실될 수 있습니다.
서비스는 죽일 수 있어도 아이디어를 없앨 수는 없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거부된 아이디어는 이를 허용하는 국가로 넘어가게 되고, 그 곳에서 성공한 서비스는 우리나라로 역수출 될 뿐입니다. 실리콘 벨리에서 성공하여 한국으로 침투해 들어오고 있는 인터넷 전화와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 같은 것들이 한국에서 최초로 출현한 아이디어였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가 각종 규제로 이런 서비스의 성장을 방해하는 동안 이를 벤치마킹한 외국 서비스들이 결국 세계적인 경쟁력을 가지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