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기사를 본 한 대학교수님이 사촌형님의 사연을 보고 2일 전주의 한 커피숍에서 조언을 하고 있다.
심명남
한편 지난 5월 31일 열린 심질수씨의 부친 심옥동은 행정심판 2심에서 기각 판정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판결문은 아직 나오지 않아 기각 이유를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이에 대해 법무법인 자우 김주원 변호사는 "이제 마지막 대법원 상고가 남아 있으나 기각될 가능성이 높다"면서 "상고심에서 원심파기로 판결될 가능성은 1% 이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이어 "판결문이 나와야 그 이유를 알 수 있지만 대개 상고심이 받아 들여지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면서 대법원서 판결이 뒤바뀔 가능성이 낮다고 점치고 있습니다.
또한 이 교수님 면담 후 4일 심옥동의 아들 심질수씨는 광주병무청에 사형수 심옥동(1925년생)에 대해 병적증명서 발급을 요청했습니다. 그런데 거절당했습니다.
광주지방병무청 고객지원과 관계자는 그 이유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사형수 심옥동(1925년생)은 심질수의 부친이 아니기 때문에 떼어줄 수 없다"라고 말했습니다. 이후 기자는 "1925년생 사형수 심옥동에 대해 알려 달라"라고 묻자 "1925년생 심옥동이 총살인지 알려드릴 수 없다"라고 답변했습니다.
이어 심옥동의 거주표가 있는지를 묻자 "육군본부에서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지만 병무청에는 수기로 작성된 자료만 있다. 거주표(병적기록표)양식으로 내용들이 기재되어 있는데 모든 자료는 군 본부에서 생성된 자료다. 군 본부에서 해당 사항을 확인하라"고 답변했습니다. 거주표가 없다는 지금까지의 답변과는 다른 내용이었습니다.
다음은 이 교수님과의 일문일답입니다.
- 아버님이 유공자로 된 심정이 어땠나?"저희 아버님께서는 돌아가신 지 29년이 흘렀는데 국가와 싸운 지 8년 만에 유공자로 인정받았다. 이후 2009년 6월 25일 대전 현충원에 안장되셨다. 안장되고도 계급, 병적사항을 정정해 3번의 묘비가 바뀌었다. 우선 보훈청에서 대형 태극기와 유공자 증이 나왔다. 현충원에 모실 때 국가에서 경건하고 엄숙하게 영결식을 치러줬다. 영결식 때 엄청 울었다. 그동안 그렇게 국가에 대해 원망도 많이 했지만 현충원에 안장되던 날 생각이 바뀌더라. 그렇지 국가는 이렇게 해야 된다고 생각했다. 아이들에게 산교육이 되었다. 지금도 좋은 일 있으면 아버님과 어머님께찾아가 말씀 드린다."
- 전사가 되어도 국가유공자로 인정받기 힘들다. 어떻게 해야 유공자로 인정받을 수 있나?"요즘에는 인우보증인 진술이 굉장히 중요해졌다. 유공자 등록신청, 병상일지, 인우보증인만 있어도 유공자로 인정된다. 나 같은 경우 전상관련 기록 찾고 국회에서 전투 중 부상자에 대한 특별법이 만들어진 것과 아버님에 대한 모순점을 찾았다. 이후 경로를 추적해 전상경로까지 찾았다. 그 다음 거주표를 찾았다. 군에서는 유공자 신청을 받으려고 하면 유족에서 입증책임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관련 자료를 못 찾는 것은 정부책임이다. 정부의 행정미스다. 국가의 잘못인 것이다. 그런데 개인의 책임으로 떠넘기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 아버님이 어렵게 국가 유공자로 결정되었다. 과정이 어땠나?"정말 어렵게 유공자로 결정되었다. 국회. 청와대. 국방부. 육군본부. 소속사단. 전쟁사박물관. 병무청 등을 상대로 싸웠다. 아버님 같은 경우 동명이인이 300명이 넘었다. 보훈청 직원들이 안 됩니다. 이런 경우 유공자로 돼 본적도 없고 힘듭니다. 어려운 쌈하고 계십니다 그랬다. 그런데 유공자로 바뀌자 태도가 180도로 바뀌더라. 국가 보훈청에 근무하면서 당신처럼 효자인 사람은 처음 본다고 말하더라."
- 한국전쟁 이후 전사. 전몰. 전상자가 얼마나 되는가?"전쟁 이후 아직도 보상받지 못한 15만 명의 전사자와 전상군인이 있다. 이들은 국가를 위해 싸우다 돌아가신 분들이 구천을 떠돌고 있다. 국가의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는데 국가는 유족 책임으로 돌리고 있다. 이것이 우리 보훈청의 가장 큰 문제다."
- 왜 유공자로 인정받기가 힘든가?"먼저 보훈청의 문턱이 너무 높다. 옛날에는 보훈청이 너무 고압적이고 무시로 일관했다. 상이군인인 참전용사는 국가의 제대로 된 보상을 받지 못하고 몸이 불편해 못살다 보니 자녀인 2세들이 하나같이 교육을 못 받았다. 그 결과 변변한 직업이 없으니 무시당한다. 이들이 보상을 받기 위해 매달리면 생업을 포기해야 하기 때문에 대부분 유공자 신청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억울해도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물고 늘어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