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도예찬(문학에 나타난 그리움의 방식들)> 왕은철 씀, 현대문학 펴냄
현대문학
생은 죽음으로 완성된다. 죽음이 없으면 생이 없다. 또한 인간은 관계로서 오롯한 인간으로 존재한다. 나는 어머니와 아버지의 피와 살을 받아 생명으로 태어나고, 나 또한 나의 살을 나누어 자식을 만들고, 의지하며 생을 살아간다. 절대자의 입장에서 보면 생명은 단절이 아닌 큰 강줄기처럼 흐른다. 하지만 인간은 절대자가 아니다. 언젠가는 지금 내가 가장 사랑하는 내 곁에 있는 자식 또는 부모님과 이별을 해야 한다.
실제로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10년 우리나라 총 사망자 수는 25만 5천 403명으로, 하루 평균 700명이 숨진 셈이다. 지금도 그 누군가는 그가 지금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영원 속으로 보내고 슬픔에 겨워 하루하루를 견뎌내고 있을 것이다.
"두 사람의 관계에서 언젠가 하나는 상대보다 먼저 죽고 다른 하나는 그 죽음을 애도하게 되어 있다. 우리가 사랑하고 있다는 걸 깨닭는 그 순간에 애도가 이미 시작되었다.<35쪽>, 삶의 바다에 넘실대는 죽음의 파도를 말하지 않고 인간사를 애기할 수 없는 탓이다.<44쪽>"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다. 헤어지면 하루도 버티지 못할 것 같은 사랑하던 사람이 떠나도, 어떻게든 살아남는다. 헤어짐의 그 순간이 고스란히 그리고 영원히 기억된다면 아마 한 달도 버티지 못하고 죽을 것이다. 하지만 지은이는 말한다.
"사랑했던 사람에 대한 슬픔에는 끝이 없어야 하며 그것이 어쩌면 진정한 애도일지 모른다.<18쪽>"라고. 얼핏 들으면 잔인하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과연 인간은 사랑을, 또는 사랑했던 사람의 부재를 완전히 메울 수 있을까.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메울 수 없다. 왜냐하면 완벽하게 잊지 못하기 때문이다.
죽으믄 잊혀지까 안 잊혀지는겨/남덜이사 허기 좋은 말로/날이 가고 달이 가믄 잊혀진다 하지만/슬플 때는 슬픈 대로 기쁠 때는 기쁜 대로/생각나는겨/살믄서야 잘살았던 못살았던/새끼 낳고 살던 첫사람인디/그게 그리 쉽게 잊혀지는감/나도 서른둘에 혼자 되야서/오남매 키우느라 안해본 일 읎서/세상은 달라져서 이전처럼/정절을 쳐주는 사람도 읎지만/바라는 게 있어서 이십 년 홀로 산 건 아녀/남이사 속맴을 어찌 다 알것는가/내색하지 않고 그냥 사는겨/암 쓸쓸하지. 사는 게 본래 조금은 쓸쓸한 일인겨/그래도 어쩌겄는가. 새끼들 땜시도 살어야지/남들헌티사 잊은 듯 씻은 듯 그렇게 허고/그냥 사는겨/죽으면 잊혀지까 안 잊혀지는겨.<도종환 "사랑방 아주머니"전문>도종환 시인 뿐만 아니라. 대상은 다르지만 프루스트의 "읽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에서도 기억의 영속성에 대해 말한다. 기억은 잊는 것이 아니라. 즉 사라진 것이 아니라 잃어버린 것이다. 잃어버린 것은 언젠가는 찾을 수 있다. 잃어버린 동전을 언젠가는 찾을 수 있듯이 말이다. 희미한 마들렌 향기의 기억을 더듬는 것으로 시작하여 11권의 책을 엮어낸 프루스트가 이를 증명해 주었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
마르셀 프루스트의 작품이다. 19세기에서 1차 대전이 끝난 20세기 초반까지 3세대에 걸쳐 무려 5백여 명의 주요 인물을 등장시키며 수천 쪽에 걸쳐 과거를 복원해낸 명작이다. '스완네 집쪽으로' '꽃피는 아가씨들 그늘에' '게르망트 쪽' 등 총 7편, 11권으로 되어있다. 주인공이 홍차에 곁들인 마들렌 향기를 맡고서 아득한 과거의 기억을 더듬으면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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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사람들이 바라는, 즉 슬픔을 빨리 잊고자 하는 것은 애초부터 잘못된 생각이다. 오히려 사랑하는 사람의 부재로 너무나 큰 슬픔에 못 이겨 모든 것을 잊는다면 그것이 오히려 비정상적이다. 즉 우울증, 트라우마 등 정신병으로 취급한다. 사랑하던 사람의 부재를 서서히 매우면서 그렇게 살아가야 하는 것이 인생이다.
그렇다. 우리는 죽은 자와 같이 살아야하고, 떠난 사랑과 같이 있어야한다. 어떻게 죽은 자와 같이 살아가야 하는가. 떠난 첫사랑을 어떻게 보듬고 살아야 하나에 대해 지은이는 여러 문학작품을 통해 가슴 절절히 알려준다. 마들렌 향기에 온갖 기억들이 끌려나오듯이, 책을 읽다보면 나의 아픈 기억들이 떠올라 나를 괴롭히다가. 끝내는 내가 그동안 외면한 또 다른 나, 즉 아픈 기억과 화해를 하게 만든다.
저자는, 진정한 애도가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를 여러 문학 작품 속에서 찾아보고자 했다. 저자의 글을 읽다보면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이 또는 부재가 가져오는 슬픔을 위한 애도의 형태가 다양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는 나보다 더 나야."이 책에서 언급한 첫 번째 작품, 폭풍의 언덕의 명대사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나 자신 보다 더 사랑한다는 것이다. 어찌 보면 통속적인 사랑의 말이다. 하지만 상대가 떠났는데도 이 감정을 영원히 간직하고 있다면 문제는 달라진다.
저자는 말한다. 폭풍의 언덕은 사랑의 소설이 아니라, 죽음의 관한 소설이라고,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면,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과 부재를 인정하지 않고 애도를 거부하고 애도에 실패한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나보다 더 내가 사랑하는 존재란 누구일까. 아들 일 수 있고, 연인일 수 있다. 이들의 떠남을 받아들이지 않고, 광기로 표출함에 따라 발생하는 비극을 폭풍의 언덕에선 잘 표현했다고. 떠난 사람을 애도하지 못하고 끝없이 사랑하면서 생기는 비극.
지금의 대한 민국에도 이와 유사한 비극들이 벌어지고 있다. 뉴스 말미에 자주 접하게 되는 치정 살인들은 사랑하는 사람을 애도하지 못하여 생긴 현상들임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