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사관 부지에 1908년 새로 지은 이사청 건물
군산시
영사관은 이사청으로 사용되다가 1908년 헐리고, 근대문명의 상징으로 흰색 고딕양식의 2층 건물로 새로 지었다. 주변에는 경찰서, 우체국, 병원 등이 있었다. 그 옆 산자락엔 일인들의 정신적 구심인 신사(神社)를 두고, 근대문명의 총아인 공원을 개발했는데 지금의 월명공원이다.
둘째, 천대전 거리는 일인들이 붙인 행정구역 이름으로 지금의 신창동을 중심으로 하는 지역이다. 황궁과 중앙부처 등이 모여 있는 일본의 정치·행정 중심지 명칭을 자신들이 사는 지역에 붙인 것. 지금도 이곳엔 히로쓰 가옥을 비롯한 일본인 부호 집들이 남아 있다.
개항 초기 군산에 온 일본인은 행상, 소매상 등 생계형이 다수였으나 경술국치(1910) 이후 일제의 척식 정책이 강화되면서 가족단위 영구적 거주자가 많아졌다. 1920년대 '산민증식 계획'으로 미곡 수탈량 급증과 함께 커다란 부를 축적하게 되고, 이때부터 천대전 거리는 일인 부호들의 주요 거주지가 된다.
셋째, 탁류 거리는 이름에서 나타나듯 조선인들의 생활공간이다. 개항 이후 신지식과 부를 추구하는 조선인들이 모여들어 지금의 죽성로와 영동 일대에 소규모 가게를 내고 영업을 했으며 대부분은 조계지의 도로를 닦거나 막일로 생계를 이어갔다. 이름 하여 '밑바닥 인생'.
구 교수는 "특히 부두에서 하역작업을 하는 조선인 노무자들과 미선공들은 개복동이나 둔율동 달동네에서 토막집을 짓고 거주했다"며 "일제강점기 이곳에서의 조선인들의 삶을 채만식의 <탁류>가 잘 드러내고 있으므로 '탁류의 거리'로 이름 지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