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용차 희생자 범국민추모위원회 회원들이 지난 4월 24일 오전 청와대 부근 청운동사무소앞에서 '살인적인 폭력진압 지시 이명박 정권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전태일 열사의 동생 전태삼씨가 쌍용차 농성 진압당시 부상당한 노동자의 사진을 들고 기자회견에 참석하고 있다.
권우성
컵라면 세 개와 맥주캔 두 개를 사들고 어둔 복도를 올라왔습니다. 며칠 전, 다시 짐을 싸들고 나왔습니다. 지난해 이맘때 이렇게 짐을 싸들고 나왔습니다. 언제 체포영장이 떨어질지 모른다는 생각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것보다 35m 고공에서 농성 중인 김진숙과 그의 동료들을 생각하면 편히 잘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를 지키겠다고 1차 희망의 버스를 타고 먼 부산까지 달려가 자본과 공권력과 사제폭력의 담장을 훌쩍 넘어주었던 많은 분들을 생각하면 어떤 책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후 지난 2월, 근 8개월 만에 다시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바뀐 게 있다면 지난해엔 목발 2개를 짚은 채였는데, 올해는 많이 가벼워져서 등산용 피켈 하나만 짚은 것입니다.
조금은 쉬고 싶었습니다. 대추리 때부터, 기륭으로, 용산으로, 콜트-콜텍으로, 한진으로 여러 투쟁사업장들로 지난 몇 년 쉴새없이 달려왔습니다. 그 사이 생이 파탄나 병원 입원 네 번, 요양 세 번, 경찰 유치장 네 번, 구치소를 한 번 다녀왔습니다. 무엇을 잘해 간 것들이 아니라, 매번 엉망으로 망가져서였습니다. 잘했든 못했든 최선은 다했으니 조금은 평온하고 순한 인간이 되는 시간을 가져보고도 싶었습니다.
목발만 떼면 어디 멀리 여행이라도 한 번 다녀오고 싶었습니다. 아무런 관계도 없는 낯선 사람들의 거리를, 낯선 바다를, 낯선 산길을, 낯선 광야를, 낯선 하늘을 하염없이 걸어보고 싶었습니다. 거기 어디에서 풍장이라도 당해도 좋겠다는 마음이었습니다. 가는 바람 한 점, 잎새 하나, 물방울 하나, 이름모를 꽃잎 하나에도 겸허해져 소박해질 대로 소박해지는 나를 느껴보고 싶기도 했습니다.
맨날 싸움판 뿐인 삶이 싫었지만, 다시 나왔습니다희망버스의 성과에도 불구하고 답이 보이지 않는 삶들을 지켜보는 것도 힘들었습니다. 재능 1600일, 콜트-콜텍 1900일, 코오롱 정투위 8년, 쌍용자동차 3년, 삼성반도체 백혈병 희생자 50여 명, 벌써 2년 고공에서 단식을 한다는 전북버스, 1년여째 본사 점거농성을 하고 있지만 기사 한 줄 안나오는 대우자동차판매, 지난 3월 다시 93명이 해고당한 K2 노동자들, 부산의 풍산기업….
"20, 30대 청춘을 회사에 고스란히 바쳐 일했던 노동자에게 10년 동안 두 번이나 해고를 안겨준 시그네틱스, 이름 대신 '개새끼'로 불리고, 60이 다된 노동자를 하루종일 벽을 보고 서 있게 하는 포레시아. 자신들의 상황을 트윗으로 날리며 끊임없이 세상과 소통하려하는 트윗 아이디 lonelylabor의 한국3M, 노동조합 만들겠다는 기자회견에 미행차량 22대로 답한 삼성공화국에 맞서 싸우고 있는 삼성노조, 우유배달로 생계를 유지해 천일이 넘는 동안 버티고 있는 동서공업. 물량 빼돌리는 회사에 맞서 천일이 넘게 밥차로 생계투쟁을 하며 싸우고 있지만 최근 법원의 말도 안 되는 판결에 두 번 상처를 받은 파카 한일유압 노동자." - <사람꽃>(금속노조 경기지부 / 다산인권센터 펴냄) 서평, 안은정님의 글 중에서 이제 그만 그런 절망적인 이야기들 곁에서 잠깐만이라도 떨어져 있고 싶었습니다. 적과 싸우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적을 닮게 된다고, 어느 틈에 내 마음에도 드리운 칼날들과 뭉툭한 둔기들과 어둔 그늘을 걷어내고 역사와 사람에 대해 낙관하는 재충전의 시간을 갖고 더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오고 싶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쌍용자동차 정리해고자 가족들에게서 22번째 희생자가 다시 나왔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제주 구럼비에서 발파가 시작되었다는 소식을 동시에 듣게 되었습니다. 그날 혼자 누워 있는 방 안이 무슨 관 속이나, 깊은 심해라도 된양 무겁고 고요했습니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 이런 걸까요. 어디로 가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나가봐야겠다"고 혼자말을 하며 나왔습니다. 아마도 다시 나는 잡혀 들어가야 할지도 모른다고 각오하고 나왔습니다.
그간 그리웠던 사람들과 무겁고 큰 이야기가 아니라 사사로운 이야기들을 나누는 소소한 시간들을 갖고 싶기도 했습니다. 달콤한 시간 한 번 없는, 애틋한 시간 한 번 없는, 환한 시간 한 번 없는, 맨날 싸움판에 실무일 인 내 삶이 싫기도 했습니다. 그런 놈이었습니다. 늘 일을 하면서 무슨 지사나 투사라도 되는 양 비치기도 하지만 다른 사적 해방감과 출구만을 꿈꾸고 있는 나는 지극히 이중적인 사람, 비겁한 사람, 나약한 사람이었습니다.
다시 제안하는 '희망의 버스'... 함께 해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