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르신들의 집단 막춤... 셔플댄스 뺨치네

안성 금광면 경로잔치에 다녀왔습니다

등록 2012.06.02 13:53수정 2012.06.02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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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70은 넘어야 노인 축에 끼는 겨."
"그랴, 맞어. 사실 70도 어린 나이제."


지난 1일 금광면 경로잔치. 오랜만에 만난 장재골 한씨 할아버지와 상촌 이씨 할아버지의 대화다. 이 두 분은 올해로 각각 87세와 86세다. 사실 경로잔치의 참가자격은 70세 이상 노인이다. 이 잔치를 준비한 안성 금광농협에서도 70세는 넘어야 경로잔치를 받을 만한 노인이라고 본 듯하다. 안성 종합운동장 실내에는 70세가 넘은 어르신들이 거의 천 명 정도가 빼곡이 앉아 있다.

"그 옛날 장터 약장사 쇼가 따로 없다"

벨리댄스 이날 공연 중 어르신들이 제일 좋아 했던 공연 장면이다. 손녀들의 재롱에 어르신들은 시종일관 박수를 쳤다.
벨리댄스이날 공연 중 어르신들이 제일 좋아 했던 공연 장면이다. 손녀들의 재롱에 어르신들은 시종일관 박수를 쳤다.송상호

어떤 어르신들은 실내에서 마련된 경로잔치에는 관심이 없다. 단지 서로 수다 떠시느라 삼삼오오 바깥에 앉았다. 아들 장가간 것부터 딸 시집보낸 것까지 이야기가 끝이 없다. 적어도 그들에겐 경로잔치보다 오랜만에 만나 수다 떠는 것이 훨씬 재밌다.

실내 공연장에는 손자나 혹은 증손자 같은 아이들이 나와서 벨리댄스를 춘다. 어르신들은 눈을 떼지 못한다. 시종일관 박수로 아이들의 열심에 환호를 보낸다. 어떤 할머니는 자신의 손자 손녀를 떠올렸는지 숙연해지기도 한다. "학교를 막 마치고 공연하러 왔다"는 사회자의 말이 떨어지자 어르신들의 박수소리가 더 커진다. 자신 같은 늙은이들을 위해 한달음에 달려와 춤을 추어주는 손녀들이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난타를 하는 아주머니들. 여기서는 모두 딸 같고 며느리 같다. 그래서 그런지 아주머니들의 재롱(?)이 어르신들의 어깨를 들썩이게 한다. 신나는 뽕짝 음악은 흥을 배가 시킨다. 딸들의 시원하고 현란한 난타 소리가 어르신들의 스트레스를 확 날려버리는 듯하다.


어르신들 안성종합실내체육관에 그득히 모인 어르신들. 중간에 일어선 어르신들도 많다. 이날 주최 측에선 1271명이 모였다고 발표했다.
어르신들안성종합실내체육관에 그득히 모인 어르신들. 중간에 일어선 어르신들도 많다. 이날 주최 측에선 1271명이 모였다고 발표했다.송상호

성질 급한 어르신은 자리를 뜬다. 그 어르신은 경품과 음식 등을 이고 지고, 그래서 한 짐이다. 마치 딸내미 집에 가는 친정엄마가 바리바리 물건을 싸들고 가는 듯하다. 자신이 뭔가 대단한 일을 이뤄낸 것처럼 그 할머니는 얼굴이 밝다. 이 분위기는 그 옛날 장날 약장사 쇼 같기도 하다. 공연 구경하고 갈 때는 한 짐 들고 가는 것 말이다.

"앉아 계시면 경품 배달해드려유"


이날 모든 시간 중 단연 인기는 경품 추첨 시간이다. 중간 중간 있는 경품 추첨 시간엔 어르신들이 '눈은 번쩍, 귀는 쫑긋'이다. 이날 주최 측에서 준비한 경품도 만만찮다. 쌀, 선풍기, 이불, 냄비 등이다. 어르신들에겐 모든 공연을 트럭으로 갖다 준다 해도 경품 시간 하나만 못하는 듯하다.

사회자의 구수한 입담이 경품 추첨 시간을 더 흥겹게 한다. "딸내미 시집보내야 하는 사람 손드셔 이불 경품 드릴랑게"라고 했다가 너무 많이 이불을 찾으니까 "하이고, 노인네들이 오늘 밤 신방 차릴 일 있나. 다들 이불만 찾으셔"라고 한다. 순간 장내는 웃음바다가 된다.

96세 경품 할머니 경품이 남아 돌자, 사회자가 96세 할머니에게 주겠다며 손들어라 했다. 바로 이 할머니가 장본인이다. 아주 쑥스러우신 표정이 귀엽다.
96세 경품 할머니경품이 남아 돌자, 사회자가 96세 할머니에게 주겠다며 손들어라 했다. 바로 이 할머니가 장본인이다. 아주 쑥스러우신 표정이 귀엽다.송상호

경품권을 3장이나 들고 있는 어르신이 사회자의 눈에 발각된다. 사회자가 "왜 그리 경품권이 많느냐"고 묻자 "다른 내외가 집에 가면서 줬다"며 웃자 순식간에 장내는 웃음 폭탄이 터진다. "3개 있어도 어차피 하나 밖에 못 타유"라는 사회자의 말이 웃음을 배가 시킨다.

경품 번호를 부르면 젊은이들처럼 즉각 대답하지 못하곤 한다. 항상 한 템포가 느리다. 전체를 진행하는 사회자가 다음 번호를 부르려면 다급하게 "여기 있어요. 여기!"라는 할머니의 목소리가 들린다. 경품 타러 나오는 데만도 한참이 걸린다. 보다 못한 사회자가 "'나요'라고 말만하셔. 그럼 경품을 앉아있는 자리까지 배달해드릴게"라고 특단의 조치를 한다.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치루는 잔치에만 볼 수 있는 경품추첨 장면이다.

경품이 남았다. 사회자가 "96세 어머니 있으면 손들어봐유"라고 말한다. 저 귀퉁이에서 두 할머니가 손든다. 쑥스럽게 경품을 받아 챙긴다. 그러고 보니 자리를 중간에 뜬 어르신들은 둘 중에 하나다. 경품에 관심이 없거나, 경품을 이미 탄 어르신이다. 어르신들을 끝까지 붙들어 놓으려는 주최 측 아이디어가 먹히지 않는 지점이기도 하다.

난타 공연 이날 며느리와 딸들이 난타 공연을 했다. 그들의 신난 춤사위와 리듬에 어르신들의 어깨춤이 절로 났다.
난타 공연이날 며느리와 딸들이 난타 공연을 했다. 그들의 신난 춤사위와 리듬에 어르신들의 어깨춤이 절로 났다. 송상호

"바로 이 맛이야, 관광버스표 막춤"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렸던 막춤 시간이다. 사회자가 음악을 틀고, 구수한 목소리로 신나는 트로트를 부른다. "다 같이 춤 춰유"라는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어르신들이 무대 앞쪽으로 나온다. 40명, 50명, 60명이 순식간에 300여 명이 된다. "우리가 하루이틀 춤 춰봤냐"는 식이다. 무대 앞은 오로지 춤판이다.

어르신들은 혼신의 힘을 다해 추는 듯 보인다. 두어 시간동안 남이 노는 것을 앉아서 보던 어르신들이 마치 한풀이를 하는 듯. 어떻게 가만히 엉덩이 대고 앉아 계셨는지 모를 일이다. 관광버스 속 춤판이 그대로 재현된다. 바로 이 맛이야 관광버스표 막춤!

한 어르신은 신나게 춤추다가 숨이 찬 듯 앉아 있다. 그러면서도 눈은 온통 신나게 춤추는 어르신들에게 가 있다. 맘으로만 추다가 1분도 채 못 되어 일어나서 다시 몸으로 춤을 춘다.

주최 측 직원도, 어르신들도, 자원봉사자들도 모두 함께 춤을 춘다. 이 시간만큼은 모두 춤으로 하나가 된다. 이런 춤판은 시골경로당에서 추던 춤과는 스케일이 다르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추는 춤은 1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다. 어르신들이 노래와 음악이 끝나니 아쉬워서 앙코르를 외쳐대는 것이 이를 증명해준다. 모두 아쉬워서 자리를 뜰 생각을 하지 않는다.

지금은 춤판 마지막 시간은 막춤 시간. 어르신들은 으레 그렇게 알고 무대 앞으로 나와 막춤을 춘다. 어찌나 신났던지 음악이 끝나자 모두 '앙코르'를 외치신다.
지금은 춤판마지막 시간은 막춤 시간. 어르신들은 으레 그렇게 알고 무대 앞으로 나와 막춤을 춘다. 어찌나 신났던지 음악이 끝나자 모두 '앙코르'를 외치신다.송상호

이렇게 금광면 어르신들은 하루 동안 신나게 즐겼다. 안성 금광면에서 하는 경로잔치는 스케일과 흥이 다르다. 어르신들은 내년에도 이 시간을 손꼽아 기다릴 게 분명하다.
#경로잔치 #금광면 경로잔치 #금광농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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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서 목사질 하다가 재미없어 교회를 접고, 이젠 세상과 우주를 상대로 목회하는 목사로 산다. 안성 더아모의집 목사인 나는 삶과 책을 통해 목회를 한다. 그동안 지은 책으로는 [문명패러독스],[모든 종교는 구라다], [학교시대는 끝났다],[우리아이절대교회보내지마라],[예수의 콤플렉스],[욕도 못하는 세상 무슨 재민겨],[자녀독립만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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