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평화의 숲 콘서트에 참석한 시민들이 공연에 맞춰 박수를 치고 있다.
최지용
인권 숲 콘서트가 열린 남산 제1별관 터는 1961년 중앙정보부(이후 안기부)가 처음 자리를 잡은 곳으로 알려져 있다. 일제의 시작이 됐던 한일병합조약이 체결된 통감관저터 뒤편으로 가파른 석조계단을 오르면 평평한 콘크리트 공터가 나타난다. 1970년대 중반 제 1별관이 들어섰고 이곳에서는 주로 통신 도·감청이 이뤄졌다고 전해진다. 1995년 안기부가 서울 서초구 내곡동으로 옮기면서 폭파해체돼 지금의 공터만 남은 상황이다.
이곳에 100여 명의 시민들이 바닥에 자리를 깔고 앉았다. 무대에는 멍석이 깔렸고 성황당 나무를 꾸며 놓은 듯 오색 천이 걸렸다. 곳곳에 안기부에서 모진 고초를 겪은 이들의 얼굴이 담긴 등이 밝게 빛났다. 등에는 수많은 조작사건 희생자들의 이름이 새겨 있기도 했다. 내란 음모죄로 끌려왔던 김대중 전 대통령과 방북 후 탄압을 받았던 문익환 목사, 그리고 천상병 시인과 인혁당 사건의 희생자들의 얼굴이 바람 불 때마다 일렁였다.
공연은 가수 '우리나라'의 무대와 정희성 시인의 시낭송으로 시작됐다. 이어서 가수 '강허달림'의 공연과 윤미향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이하 정대협) 상임대표와 변영주 영화감독의 '인권토크'가 진행됐다. 콘서트에 온 시민들은 가수들의 공연에 흥겹게 박수를 치거나 노래를 따라 부르며 호응했다. 또 어두웠던 시절을 담은 시를 낭송될 때면 모두 숨을 죽였다. 안기부 피해자 가족이기도 한 윤미향 정대협 대표가 당시를 회상하자 안타까운 탄식을 뱉기도 했다.
최근 마포구 성미산에 '전쟁과 여성인권 박물관'을 개관한 윤 대표는 "1993년, 결혼한 지 5개월 28일 만에 남편이 안기부에 잡혀갔다"며 "지금 딸아이가 그때 뱃속에 있었는데 며칠을 찾아와서 면회하게 해달라고 울고불고 구르기까지 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의 남편 김삼석씨가 연루됐던 '남매간첩단사건'은 결국 안기부가 조작한 사건임이 이후 밝혀졌지만 윤 대표는 "아직 그 악몽은 끝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윤 대표는 "정대협을 후원하려고 하는 제일동포분이 있었는데 최근 '윤미향의 남편이 간첩이니 그를 후원해서는 안 된다'는 협박을 받고 아주 어려워했다"며 "벌써 20년이 지났고 그 때 뱃속에 딸이 이제 대학을 가는 마당에 모든 상처가 사라진 줄 알았는데 아직 끝난 게 아니었다. 그 뒤로 또 다시 악몽을 꾼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가 이런 콘서트를 여기서 자주 열어서 서울시가 허가 안해도 자연스럽게 인권과 평화가 이야기되는 공간으로 만들면 어떻겠냐"고 제안해 큰 박수를 받았다.
영화 <낮은 목소리> 시리즈로 위원부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영화에 담아온 변영주 감독도 "이명박 정부가 잘못된 영화정책을 펼치면서 독립영화 전용관을 빼앗겼는데 이번에 100% 민간에서 기금을 마련한 '인디스페이스'가 광화문에 문을 열었다"며 "성미산에 전쟁과 여성인권 박물관과 인디스페이스, 그리고 여기 인권과 평화의 숲을 연결하는 인권관광코스를 만들면 대박이 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는 서울시가 관리... 34년 공작정치 흔적도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