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식대로 돌진해 반찬통이 쏟아지면 맨밥을 먹어야 하니 주는대로 먹어야 한다
이승열
도시락을 싸 다니는 것이 유일한 생존의 길이었다. 1분 1초가 아까운 출근시간, 울며 겨자 먹기로 도시락을 싸는 것을 고역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하다 보니 생각보다 할만하고 쏠쏠한 재미마저 느껴졌다. 자가용이 있으니 1980년대 후반처럼 커다란 가방을 들고 다녀야 하는 번거로움도 없어졌다. 쓰레기통 직행 신세를 면치 못했을 온갖 장아찌며 김치 같은 것들이 비워지고 냉장고가 정돈됐다. 도시락을 싸니 점심값 굳지, 음식 쓰레기 줄지, 조용하게 혼자 먹으니 소화도 잘 되지... 완벽한 '생활의 재발견'이었다.
유난스레 밥을 천천히 먹는 나는 주변 사람들과 속도를 맞추다 보니 소화 불량에 걸리기 일쑤였다. 사람들을 기다리게 하는 게 미안해 다 먹지도 못하고 식판을 엎었던 적도 있으니 혼자 먹는 도시락이 내게 안성맞춤이었다. 모두 아는 쓸모없는 식사시간 잡담이 없이 밥 먹는 일에만 집중할 수 있으니 더욱 좋았다.
그렇게 1년을 도시락을 챙겨 먹은 뒤, 다른 학교로 가게 됐다. 이전 학교에서는 도서실에 딸린 부속실에 혼자 있으니 반찬 냄새가 풍겨도, 좀 이상한 반찬을 싸와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새로 옮긴 학교에는 밥 한 그릇 앉아 먹을만한 공간이 없었다. 교직원 식당에 갔다가 도저히 밥알이 목구멍에 넘어가지 않을 것 같은 날에는 근처 식당에서 5천 원짜리 청국장과 1500원짜리 주먹밥, 6천 원짜리 동태찌개 같은 것을 사 먹었다. 그렇게 5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