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 어딨나아이들은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묘 젯상에 자신의 이름까지 새겨진 것이 좋은 모양이다. 아빠 이름도 확인하고 틀린 글자 없나 보고, 또 보고...
한진숙
젊은 자식들 못지않게 손발을 놀리시던 아버지가 고목처럼 마른 얼굴로 웃는다. 뒤늦게 가묘 만드는 일이 자식들을 위한 배려이기도 하다는 것을 알아차린다. 부모의 내리사랑은 죽음 이후에도 이어진다. 세 아들과 며느리, 손주들은 물론 출가외인 딸과 사위, 외손주 이름까지 새겨진 비석을 가운데 세우고 쌍둥이 묘가 만들어진다. 묘 주위에 뗏장을 덮어 폭신한 잔디밭도 만든다. 천방지축 내 아이들이 뗏장을 지근지근 밟으며 비석에 새겨진 자기 이름을 여러 번 확인한다.
아이들은 오늘의 풍경을 어떻게 기억할까. 더웠던 기억, 운동화가 흙투성이가 됐던 기억, 둥그런 묘 속에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어떻게 집어넣나 궁금했던 기억들이겠지. 어쩌다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제사를 지내러 올 때 묘 주위에서 토끼풀을 뜯어 반지를 만들었던 기억을 생각해내며 거기 서 있던 외조부모를 같이 떠올려주면 내가 굳이 아이들을 끌고 온 보람이 있을 듯하다.
돌아오는 고속도로에서 갑자기 노루를 만난다. 다음 날 아이들 등교와 출근이 걱정돼 운전속도를 올리던 오빠는 뛰어든 노루를 피할 틈이 없다. 졸고 있던 나와 아이들은 차가 크게 흔들리며 둔탁하게 부딪히는 소리가 나자 비명을 질러댄다. 뒤따르는 차들 때문에 노루를 치고서도 차를 멈출 수가 없다. 가까운 휴게소에 가서 놀란 가슴을 진정하고 차를 살펴볼 뿐이다.
아이들은 아직 노루가 살아있을 지 모른다며 119 아저씨한테 전화하자고 졸라댄다. 시속 100km 이상 속력을 내고 있던 차에 치인 그 노루가 살았을 리가 없다. 급사하지 않았다하더라도 뒤따라오는 차에 또... 애달픈 마음으로 부모의 죽음을 준비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급히 일상생활로 돌아가던 우리들은 죽인 노루를 묻어주기는 커녕 고속도로에 버려두고 오게 됐다. 필연적일 부모의 죽음과 노루의 비명횡사가 뒤엉켜 서울에 와서도 며칠동안 마음은 고향 골목길을 헤맸다.
언젠가 정말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쉴 곳이 필요한 날이면 뗏장이 곱게 입혀진 동그란 부모님 묘 옆에서 잠시 쉬는 내 모습이 그려진다. 죽으면 바다에 뿌려지길 원했던 마음을 바꾼다. 내 아이들이 가끔 고단할 때 나무에 등을 기대고 앉았다가 다시 힘을 내 삶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나무 밑에 내 재를 뿌려달라고 해야겠다. 남은 사람들을 묵묵히 위로하는 죽음이 될 수 있게...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공유하기
부모님 가묘 만든 날... 다른 결심을 했습니다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