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의 부동산 사무실 안.나의 첫 사업 보금자리인 이곳이 내게 처음으로 '돈의 쓴맛'을 맛보게 해줄 줄은 몰랐습니다.
서상훈
3개월쯤 전에 일어난 입니다. 제가 운영하고 있는 부동산에 한 손님이 찾아왔습니다.
50대 중후반으로 보이는 그의 행색은 영락없는 노숙자였습니다. 냄새는 안 났지만요. 그 손님은 의자에 앉더니 다짜고짜 사무실과 원룸, 아파트를 각각 하나씩 구해 달라고 했습니다. 상대하고 싶지 않았지만, 어쩌겠습니까? 부동산 중개업은 엄연히 서비스업입니다. 외양적인 것 때문에 손님을 차별하는 건 프로답지 못한 일이죠. 그 손님의 주문대로 여기저기 물건를 수소문했습니다. 그 손님이 대뜸 말합니다.
"계좌번호 불러 줘. 수수료 쏴 줄 테니까."
그 말을 들은 저는 속으로 난감하게 생각했습니다. 아직 계약서를 작성하지도 않았고, 물건을 보러 가지도 않았는데 중개 수수료부터 준다? '이게 말로만 듣던 '사기꾼'이구나'라고 의심을 했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다른 마음이 드는 것입니다. '그래도 혹시 모르잖아? 정말 수수료를 잘 주는 손님일지도 모르는 거잖아? 대충 계산해도 백만 원 이상은 벌 수 있을 것 같은데….' 어떻게든 이 손님에게 중개수수료를 받자는 생각이 들면서, 손님의 비위를 맞추기 시작했습니다.
저의 속마음이 들킨 건가요? 좀 잘 보이려고 고개를 숙였더니, 손님은 거만해져서 한껏 저를 업신여겼습니다. 커피가 별로라느니, 니가 사업을 아냐느니, 요즘 부동산들 다 밥 굶고 있다며 불쌍하다느니…. 제가 손님의 신상에 대해 기본적인 질문을 할 때면 "아, 수수료 준다니까!"라는 식의 말로 제 입을 막았습니다.
'아, 수수료 준다니까!'"돈 준다는 데 뭔 말이 많아"란 말에 저항도 못한 나아직도 그 말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그 말을 하던 그 손님의 거만한 표정과 목소리도 생생합니다. 돈을 준다는 데 뭔 말이 많으냐, 뭐든 내가 시키는대로 해라, 이런 느낌을 받았지요. 그런데 그런 말에 별다른 저항도 못하는 제 자신이 더욱 더 모욕적으로 느껴졌습니다. 얼마 후, 그가 사기꾼임을 이웃인 D중개업소 사장에게 들었습니다.
수수료를 넣으러 은행에 간다던 그는 D중개업소에도 갔던 모양입니다. 그곳에서 점심 값이 필요하다며 2만 원을 요구했다고 합니다. 그는 고시원에 살며, 자신은 사업해서 얼마든지 자금을 융통할 수 있다고도 했답니다. 저보다 중개 경험이 많았던 D중개업소 사장은 그 손님이 두고 간 제 명함을 보고 연락했습니다.
허탈했습니다. '돈의 쓴 맛', 이런게 아닐까 싶었습니다. 공교롭게도 부동산을 시작하고서 저는 '돈의 쓴맛'을 여러 번 보고 있습니다. 부동산이 돈과 가장 밀접한 재화여서 그런 것 일지도 모르지요. 얘길 꺼낸 김에 '돈의 쓴 맛'에 관한 저의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저는 벌써 '돈의 쓴 맛'을 보았습니다. 아직 서른 중반도 안 돼서 부동산 중개업자가 된 저를 주변사람들은 의아해 할 정도로 바라봅니다. 개업한 지 1년이 조금 넘었죠. 하지만 여전히 동네 어르신은 "젊은 사람이 부동산 하네~"라고 말합니다. 그 말을 듣는 저는 '나이도 적은데 기특하다'는 뜻으로만 받아들였지만, 한편으로는 '부동산 하기에는 아직 어리다는 뜻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최근에야 들고 있습니다.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취득한 뒤 남의 밑에서 일을 했지만, 왠지 모를 답답함을 느꼈었습니다. 무작정 사장이 되고 싶었죠. 이것부터가 탐욕의 발단이었습니다. 경험이 부족한데도, 섣부른 마음으로 사장이 되려고 마음 먹었습니다. 별다른 준비도 없이 천만 원이란 거금을 빌려서, 서대문구에 부동산을 차렸습니다. 매월 월세가 수십만 원이 나가도, 저는 별다른 거리낌이 없었습니다. 그때는 정말로 무식했죠.
첫 번째 '돈의 쓴 맛' : 부동산 창업 집 내놓은 사람과 집 구하는 사람을 잘 연결시켜주고, 계약서를 써서 수수료 받으면 되지라고만 생각했습니다. 단순히 그렇게만 생각하고, 부동산 중개업계에 뛰어들었습니다. 이미 이곳 서대문구는 다른 지역처럼 부동산 중개업소가 포화 상태라는 걸 모르고요.
올해 2월에 <아시아투데이>에서 '지방으로 봇짐싸는 부동산 중개업자- 서울, 지방 중개업 양극화 심화'라는 기사가 날 정도로 수도권은 더이상 중개업소를 차릴 곳이 없습니다. 그래서 지방으로 떠나고 있겠죠. 공인중개사 자격증만으로는 중개업이 불가능하냐구요? 물론, 창업은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영업은 자격증만으로는 부족합니다.
한때, 자격증을 대여해 주는 유혹에 흔들린 적도 있습니다. 1년 대여해 주면 200만 원 정도는 받을 수 있었습니다. 물론, 자격증 대여같은 일은 하지 않았지만요. 제가 부동산 창업으로 '돈의 쓴맛'을 본 이유는 우아하게 일하며, 많은 돈을 벌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기 때문입니다. 기대만 하고 노력할 줄 몰랐고요. 결국, 노력없는 기대는 탐욕일 뿐이고 그런 탐욕은 첫 사업의 몰락이라는 결과로 이어졌습니다.
공인중개사가 노후대비 최고의 자격증이란 말, 광고 문구에서 보신 적 있으시죠? 이미 그건 큰 의미가 없는 이야기가 되어버렸습니다. 현장에서 거래는 실종된 지 오래고, 임대차 시장도 물량이 없습니다. 전·월세난은 만성화되어 있습니다. 부동산 중개업은 결코 노후에 편하게 돈을 벌 수 있는 사업이 아닙니다. 발로 뛰지 않으면, 망할 수밖에 없거든요. 시세차익을 기대하는 부동산 투자도 더 이상 시원치 않게 되었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