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웅전 현판의 힘차면서도 예술적인 붓글씨를 감상하다. 초정 권창윤 서예가의 작품이다.
정만진
네 그루 소나무의 그 많은 뿌리들은 애써 불상을 피해, 빙빙 주위를 돌며 불상을 지키듯이 둥글게 뻗어 있었다. 진흙이 불상을 덮치지 못하도록 뿌리들은 사방을 빈틈없이 막고 있었다. 그 덕분에, 땅 위로 들어올렸을 때 불상에는 더러운 찌꺼기 하나 묻어 있지 않았고, 황토를 닦아내니 초저녁 저물 무렵의 산속이 온통 한낮으로 느껴질 만큼 환해져 눈이 부셨다. 불자(佛子)가 아닌 일꾼들까지도 모두 삽을 땅에 내려놓은 채 그 자리에 덥석 엎드렸다.
불상이 있던 자리에는 대웅전이 지어졌다. 유형문화재 322호로 지정된 불상은 지금 대웅전 안에 고이 모셔져 있다. 소나무는 본래의 그 자리를 그대로 지키고 있다. 네 그루 소나무들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사천왕이 되어 불상을 지키고 있는 것이다. 대웅전 현판은 우리나라 서예의 거목 초정(艸丁) 권창윤 선생의 글씨로, 금당 앞 소나무의 기상이 옮겨 앉은 듯한 힘찬 필체를 보여준다.
대웅전 문을 열고 법당 안으로 들어선다. 이런 금당은 으레 옆문으로 들어서는 법이니, 안으로 들어섰다고 해서 불상이 곧장 정면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하지만 금당(金堂)도 아닌 만장사의 대웅전 안은 들어서는 순간부터 너무나 환하다. 불상 앞 정면까지 다가서지도 않았고, 사진을 찍기 위해 미리 전깃불을 껐는데도, 청명한 가을날 대낮의 들판처럼 법당 안은 눈이 부실 정도로 밝다.
흔히 금빛을 입힌 불상이 모셔지기 때문에 절의 본당(本堂)을 금당이라 한다. 금당 안이 저절로 환한 것은 그 때문이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흙속에서 올라온 본래 모습 그대로, 아무런 색깔도 입혀지지 않은 채 그냥 앉아 있는데도 만장사 대웅전의 불상은 밝은 빛을 확확 뿜어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