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운동 경북 시발지 기념탑 앞에서 바라본 비안 '읍내'의 풍경.
정만진
∘ 3월 12일 정오 쌍계동에서 기독교 신도들과 학생 주민 등 200여 명이 태극기를 들고 마을을 누비며 독립만세를 부르며 시위하다가 뒷산에 올라가 다시 "독립만세"를 부른 뒤 해산하였다.
급보를 받은 의성경찰서 경찰부장은 오후 4시 비안주재소 경찰을 지휘하여 주동인물 5명과 추가로 13명이 검거되어 옥고를 치렀다.
주동자 박영화는 끌려가면서도 "오금을 끊을 놈들! 의인의 나라는 망하지 않는다!"면서 일본놈 경찰의 간담을 서늘케 했다고 전해오고 있다.
∘ 3월 12일 전국 각지에서 요원의 불길처럼 일어나는 독립만세운동에 발맞추어 동부동 서부동에서 의거를 단행하고자 나선 애국청년 김석근 임재호 박후도 박홍섭 등이 김석근 집에 모여 만세운동을 일으켜 독립을 쟁취할 것을 맹약하고 태극기 120여 개를 제작하였다.
∘ 3월 13일 밤 8시경 비안 시장에 50여 명의 농민들이 태극기를 나누어 가지고 동부동과 서부동을 오가며 선창에 따라 "대한 독립 만세"를 부르며 시위를 전개하니 군중들은 100여 명이 넘게 되었고 24명이 검거되어 옥고를 치렀다.
∘ 3월 16일 오후 3시경 비안 장날 김석근 손동일 임재호 박후도 박홍섭은 모인 군중 50여명과 태극기를 들고 "독립만세"를 부르며 시위를 전개하다가 경찰의 출동으로 해산했으나 그후 주동인물을 포함한 22명이 검거되어 옥고를 치렀다.
오후 9시 이두동과 장춘동에서도 아동들이 주동하여 농민들과 150여 명이 함께 만세 시위를 일으켰으나 경찰들의 출동으로 해산되었다.
➳ 인근 지역으로 확산
안평면 대사동, 3월 15일 오후 7시 100여 명
안평면 석탑동, 3월 16일 밤 50여 명
봉양면 사부동, 3월 17일 저녁 100여 명
봉양면 도리원, 3월 19일 장날 수천 명, 권해운 현장에서 순국
점곡면 사촌동, 3월 18일 10일 수백 명
의성읍, 3월 18일 오후 4시 시장에서 수천 명
신평면 덕봉동, 3월 25일 오후 9시 50여 명
춘산면 금오동 4월 3일 모의 누설 실패
가음면 귀천시장에서도 만세운동이 일어나게 되었으며 다른 지역 시군으로 확산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