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신대 신학생들이 유동운 열사 32주기 추모제에서 민중가요를 부르고 있다.
조호진
한국엔 신학대학이 허투루 넘친다. 매년 배출되는 신학생들의 상당수는 실업자가 될 수밖에 없다. 교회를 개척하고 싶어도 널린 게 교회다. 도시의 야경엔 붉은 십자가 천지다. 다방 간판보다, PC방 간판보다 더 많을까? 한국 교회는 돈 먹는 하마가 장악했고 예수의 길과 십자가의 길이 끊어진 지는 한참 됐다. 보다 못한 죄인들이 돌 대신 침을 뱉거나 야유를 퍼붓지만 꿈쩍도 않는다.
신학대라면 하나님에게 인가를 받아야 할 텐데 교육부에게 인가 받는다. 그나마 한신대는 다른 신학대들이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독재정권에 줄을 대고 축복기도를 바칠 때 피를 흘리며 저항했다. 장준하, 김재준, 안병무, 문익환, 서남동 등의 신학자와 목사들이 역사의 십자가를 지고 진보를 이루었다. SKT(서울대, 연-고대) 따위는 감히 흉내 낼 수 없는 거룩한 학맥이다.
유동운, 그 또한 예수처럼 부활했다. 80년 10월, 한신대생들은 유동운 추도식을 마친 후에 계엄령 철폐를 외치며 나섰다가 146명이 연행됐고 학교엔 휴교령이 내려졌다. 그리고 강희남 목사 등이 나서서 유동운 열사 추모비를 1987년 교정에 세웠고 경찰의 침탈 앞에서도 지켰다. 그리고 신학생 후배들은 매년 추모제를 열면서 예수의 길, 민중의 길, 십자가의 길을 다짐한다.
한철희(22·신학과 3학년) 신학과 학생회장은 "누군가 십자가를 져야 한다면 유동운 선배님처럼 한신대 신학생들이 져야 하지 않겠는가? 라는 고민을 한다"면서 "이번 추모제를 통해서 유동운 선배님처럼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 십자가의 길을 갈 준비가 되었는가? 묻고 또 다짐했다"고 말했다. 신학생 200명 가운데 '도대체, 오월이 나와 무슨 상관이냐!'며 무관심 한 학생들도 일부 있단다.
유족 대표로 참석한 동생 유동인(50)씨는 "오월 정신이 촛불과 희망버스, 강정마을로 이어지고 있다"면서 "취업과 생존의 어려움으로 힘들겠지만 유동운 선배를 떠올리면서 어깨를 걸고 역사 앞으로 걸어가 달라"고 부탁했다. 고인의 부친인 유연창(85·대구 봉산성결교회 원로목사) 목사는 대구에서 살면서 재야활동을 하고 있다.
추모제에 참석한 신학과 동기생인 김해성(51·지구촌사랑나눔 대표) 목사는 "동운이가 도청을 사수하던 그때에 저는 수배자로 도망 다니면서 목숨을 부지했던 비겁한 사람"이라면서 "그 빚을 갚기 위해 이주노동자들을 돕는 일에 뛰어 들었고, 예수의 길을 어떻게 걸어가야 할까? 고민하며 살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내 가슴엔 동운이가 활화산처럼 살아 있다"며 고인을 그리워했다.
32주기 추모제는 유동운 추모비 앞에서 기도로 마쳤다. 기도는 고인의 1년 선배인 연규홍(52) 신학대 교수가 했다. 신학과학생회가 주최한 추모제를 지켜본 연 교수는 "교수와 교회를 깨우쳐 준 여러분(신학생)이 진정한 한신(한신대 신학과)이고 기장(기독교장로회)"이라면서 "유동운 선배의 뜨거운 가슴을 가지고 한신을 변화시키고 진정한 민주주의와 남북통일을 이루어 달라"고 당부했다. 또한 "교수와 강의실이 아닌 역사와 고난의 현장에서 진리와 정의를 깨우치는 한신인이 되어 달라"고 거듭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