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촘스키 MIT 명예교수(오른쪽)가 22일(현지시각) 제주 출신 평화활동가 고길천 화백과 함께 피켓을 들고 우근민 제주도지사가 해군기지 공사 중지 명령을 내려 줄 것을 촉구하고 있다.
최경준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을 비판해온 세계적인 석학 놈 촘스키(Noam Chomsky) 매사추세츠공대(MIT) 명예교수가 우근민 제주도지사를 향해 해군기지 건설 공사를 중지하라고 요구했다.
촘스키 교수는 22일(현지시각) 제주 평화활동가 고길천 화백을 만난 자리에서 "(우근민) 제주도지사가 그의 영향력과 능력을 사용하여 해군기지 건설 반대 운동에 동참하고, 심각하고 위협적인 일을 종식시키는 조치를 취하기를 호소한다"고 말했다. 촘스키 교수는 필요하다면 우근민 제주도지사에게 직접 편지를 쓰겠다는 입장도 밝혔다.
고 화백은 촘스키 교수에게 제주 강정마을에서의 해군기지 반대 시위가 경찰에 의해 완전히 봉쇄됐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촘스키 교수는 "세계 여러 사람들이 제주 강정마을 주민들의 항의에 동참하고 지지하기를 희망한다"며 해외에서의 연대 활동을 호소했다. 그는 특히 "극단적으로 위협적인(extremely threatening) 해군기지 건설이 종식되기를 요구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촘스키 교수는 '구럼비를 죽이지 마라'는 글자가 새겨진 노란색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전시회 도중 촘스키에게 날아간 고길천 화백의 고민고길천 화백은 지난달 초부터 미국 워싱턴주 시애틀과 캘리포니아주 샌타로사에서 개인전을 열고 있다. 제주 출신 화가로서 제주 4.3 항쟁에 깊은 관심을 보여 온 그는 최근 몇 년 동안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반대 운동에 참여하면서 예술가 이전에 평화활동가로서 더 많은 시간을 보냈다. 따라서 이번 미국 전시회는 오랜만에 예술가로서의 본업에 충실할 수 있는 기회였다. 오는 27일까지 예정되어 있는 샌타로사 개인전은 5년 전 제주도를 방문한 한 예술가의 기획으로 어렵게 추진됐다.
그러나 바다 건너 들려오는 강정마을 소식은 고 화백을 생업에만 집중하게 놓아두지 않았다. 경찰은 강정마을 주요 지역에서의 모든 집회를 금지하고, 시위대를 무차별 연행하는 강경책을 썼다. 주민들은 "집회의 자유를 허용해 달라"며 법원에 호소했지만 이마저도 지난 11일 기각됐다. 경찰에 의해 고립된 상황에서 강동균 강정마을 회장은 시야를 해외로 돌렸다. 전 세계 평화·환경활동가들의 연대를 호소하고 나선 것이다.
멀리서 불편한 마음으로 이를 지켜보던 고 화백은 순간 놈 촘스키 교수를 떠올렸다. 작은 마을 회장의 처절한 외침보다 좀 더 영향력 있는 인물의 무게감 있는 호소가 필요하다는 판단에서였다. 그는 곧바로 촘스키 교수에게 면담을 요청하는 이메일을 보냈다. '세계적 석학'이라는 수식어가 어색하지 않을 만큼 촘스키 교수는 바쁜 스케줄을 소화하고 있다. 따라서 보통 2~3개월 전에 면담을 요청해야 가능하고, 허용되는 면담 시간 역시 인사 나누기에도 모자랄 만큼 짧다.
그러나 고 화백의 연락을 받은 촘스키 교수는 이례적으로 2주 만에 면담 약속을 잡아줬고, 면담 시간 역시 평소보다 2~3배 이상 더 많이 할애해줬다. 강정마을 해군기지 문제에 대한 촘스키 교수의 관심을 반영한 것이다. 고 화백은 이제 막 중반에 접어든 전시회를 뒤로한 채 미련 없이 비행기에 몸을 싣고 미 동부 뉴저지주에 있는 누님 댁으로 날아왔다. 하지만 고 화백의 두 손에는 미국 전시회를 위해 들고 온 작품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때부터 모든 게 급조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