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 속을 걷거나 머물면 스며드는 안개에 젖을 수밖에 없습니다.
임윤수
안개가 자욱한 아침, 자욱한 안개 속에 머물거나 걷다보면 안개가 온몸으로 젖어듭니다. 안개가 어떻게 생겨나고, 온도와 습도, 바람과 일교차가 안개가 생겨나는 데 어떤 역할을 하는지 몰라도 안개 속에 머물다 보면 서서히 스며든 안개로 온몸이 촉촉하게 젖어 듭니다.
안개만 그런 게 아니라 숲에 드리운 꽃향기와 싱그러움도 그렇습니다. 온갖 꽃들이 만화방창한 숲, 송홧가루가 노랗게 날리고 아카시아향이 바람에 실려 퍼지는 울창한 숲길을 걷다보면 송홧가루가 머릿속까지 파고들고 아카시아 향은 가슴속까지 스며듭니다. 꽃가루 알레르기가 있더라도 만화방창한 숲에서 살아야 한다면 풀풀 날리는 송홧가루, 이름을 다 알지 못하는 꽃가루, 바람에 실려 오는 꽃향기들을 피해 살 수는 없을 겁니다.
안개 속에 머무른다는 자체만으로 온몸이 안개에 젖어들고, 숲길을 걸었다는 이유만으로 꽃가루가 묻어나거나 꽃의 냄새를 맡아야 하듯이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도 이와 같습니다.
사용하는 말의 어원과 유래를 알지 못해도 말을 사용하고 있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우리는 이미 불교에 젖어 들거나 불교가 스며듭니다. 언어는 생각을 드러내거나 마음을 정리하는 도구이자 수단입니다. 사랑과 친절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며 살생이나 폭력을 떠올리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용어들은 마음을 나타내는 가치이며 척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말에 안개처럼 스며 있는 '불교 유래 용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