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천서원 터에 남은 비석
정만진
위성교를 넘어 구천면으로 들어왔을 때, 바로 왼쪽의 마을에 구천서원이 있다. 아니, 지도에는 '구천서원'이라 기록되어 있어 서원 건물이 있는 것으로 여겨지지만, 실제로는 '龜川書院 六先生 埋版所(구천서원 육선생 매판소)'라는 조그마한 비석과 그것의 비각만 남아 있다. 1721년에 세워졌지만 1868년(고종 5)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에 따라 서원은 사라졌고, 그 장소(所)에 박의중, 박서생, 김효정, 정휘, 이우, 장용한, 여섯 선비의 이름과 돌아가신 날짜를 적은 위패[版]만 묻혀[埋] 있다.
구천서원이 있던 마을의 이름은 본래 '九川(구천)'이었다. 마을 위쪽에서 아홉[九] 개의 샘[井]이 내려보내는 물길이 흘러가는 '벌'판이라 하여 본래는 "구정벨" 또는 "구즌빌"이라 하였는데 나중에 九川(구천)으로 바뀌었고, 다시 龜川(구천)이 되었다. 아홉 갈래의 물길이 마을 안을 지나 위천으로 이리저리 흘러드는 모양을 거북[龜]의 등에 빗댄 것으로 여겨진다.
위성교에서 메뚜기가 펄펄 날고 있는 평야를 지나 구천면 소재지 안으로 들어가면 삼거리가 나타난다. 여기서 오른쪽으로 1km쯤 가면 "미륵댕이" 또는 "서낭댕이"라는 이름이 남아 있는 작은 고개가 있고, 그 고개 아래 오른쪽 사과밭 뒤 솔숲에 문화재자료 305호인 '내산리 석불좌상'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