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메트로9호선이 서울시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일방적인 요금 인상을 추진하고 있는 가운데, 1일 오후 서울 중구 맥쿼리인프라 사무소 앞에서 통합진보당 서울시당과 한국진보연대 참여연대 주최로 열린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9호선 요금 기습인상과 전국 14개 민자산업에 참여하고 있는 맥쿼리의 특혜의혹에 대해 진상규명을 요구하고 있다.
유성호
아시아, 아프리카, 유럽. 세 대륙에 걸친 오스만 터키라는 거대한 제국이 있었다. 모든 것의 발단은 제국이 끝내 이긴 크림전쟁이었다. 크림전쟁으로 국채를 발행했는데, 그 국채를 사들인 영국과 프랑스가 채권회수를 직접 하겠다고 나섰다. 핑계는 제국의 조세제도도 못 믿겠고, 야만의 동양의 전제왕정국이라서 제국의 신용도 못 믿겠다는 것이다.
결국, 영국과 프랑스는 수도 이스탄불에 직접 '공채관리국(Public Debt Administration)'을 세워 5000명의 관리(직원?)를 고용하여 제국 전역에서 세금을 걷기 시작했다. 그러자, 조세가 부족하게 되고, 그 때문에 국가재정이 다시 어려워지자 제국은 국채를 더 발행했다. 다시 이를 사들인 영국과 프랑스는 공채관리국을 통해 더 많은 제국의 세금을 빼앗아갔다.
그런 악순환이 30년, 40년 지속되자 제국은 서서히 망해갔다. 더 이상, 제국의 근대적 발전을 위한 투자는커녕, 자신의 고유 영역조차 방비할 비용조차 마련하지 못했다. 결국, 지금의 터키반도와 이스탄불을 제외한 모든 지역은 차례차례 영국과 프랑스의 것이 되었다. 그렇게, 오스만 터키는 망했다.
국가재산 바치기500년이나 긴 역사를 자랑하는 왕국이 있었다. 너무 길어서 아놀드 토인비 같은 서양학자는 비웃었지만 말이다. 그런 500년의 조선 왕이 어느 날 밤에 자신의 궁궐에서 일본 제국주의 용병과 그들의 앞잡이인 자신이 만든 최신식 군대에 의해 죽음에 내몰렸다. 그냥 공포가 아니라 그의 부인, 민자영은 그날 밤 침입자들에 의해 참혹하게 살해되었다. 그날 이후, 죽음의 공포와 불신 때문에 불면의 밤을 보내야 했다.
그런데 그의 침상을 지킨 사람들이 있었다. 외국의 공사들과 기독교 선교사들이었다. 이들이 있어야 편히 잠이 들었다. 급기야는 죽음의 공포를 피해 자신의 궁궐에서 도망쳐 외국 공관으로 도피하여 살았다. 이 유명한 이야기의 주인공은 이명복, 즉 고종과 을미사변, 아관파천이란 역사적 사건이다.
그런데, 자신의 잠자리를 지킨 대가를 외국인들에게 주어야 했다. 국가의 주요 광산과 전기 같은 국책사업, 철도 같은 기간 교통망, 산림, 토지를 다 내주어야 했다. 잠자리를 제공한 러시아에게는 통 크게 가장 많이 내주었다. 친절한 미국에게는 운산의 금광과 경인선을 내주었다. 잠자리의 안전을 지킨 대가치고는 너무 큰 것이다.
널리 알려진 대로, '노다지'의 어원이 평안도 운산의 금광에서 노동하는 조선인 노동자에게 미국인 광산주가 "no touch(노 터치)!"라고 하는 야멸찬 멸시의 말이라고 한다. 심지어 광산주가 지역토지를 강탈하고 지역농민을 죽여도 처벌받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대한제국"이고, "광무황제"라고 한다. 그리고 "광무개혁"을 해서 근대화를 하겠다고 떠들어 댔다.
물론, 당시에도 이 터무니없는 국가자산의 외국자본 침탈에 저항이 많았다. 조선 최초의 시민단체인 독립협회가 만민공동회라는, 종로에서의 대중 집회를 열어 담당 대신들과 공개토론회를 여는 등 반대여론을 이끌었다. 하지만, 국가 자산을 헐값 또는 공짜로 외국 자본에게 퍼준 조선의 왕은 독립협회를 무력으로 해산시켰다. 그러고도 개혁을 한다고 꼴값을 떨었다. 하지만 국가 재산과 시민을 망가트리며 한 그 개혁은 필연적으로 실패했다. 그리고 망했다. 일본 제국주의가 강해서가 아니라 왕이 잘못해서 조선은 망했다.
맥쿼리와 민자사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