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매일 아침 맞이했을 집. 청소를 해도 다음날 아침이면 늘 이런 상태가 된다. 식탁에는 엄마없는 집에서 주식이 된 빵이 눈에 띈다.
김가람
화가 났다. 모두 늘 바쁜 것은 아니니, 적당히 역할을 나눠 집안일을 하는 것이 맞는 게 아닐까. 하지만, 애석하게도 그건 나만의 상상이었다. 모두 집안일을 하지 않는다고 나마저 손을 놓을 수 없다는 스스로의 생각은 더욱 날 화나게 했다. 앞으로 엄마 없이 지낼 날들이 아득하기만 했다. 그때 내가 도움을 청한 건 내 친구였다.
기혼인 내 친구는 홀로 가사노동을 모두 맡고 있다. 그 친구가 남성, 게다가 직업도 있다. 이런 조건들을 조합해 볼 때 한국 사회에서는 흔히 찾을 수 없는 친구라고 할 수 있다(물론 부인도 직업이 있다).
그는 성인이 된 이후부터 사회운동, 노동운동을 했던 친구이고 지금까지도 그렇다. 그 영향인지 그 친구는 한국 사회의 여성문제에도 관심이 많았다. 특히 그는 여성의 일방적인 가사노동에 대해 반대한다. 그는 자신이 생각하는 페미니즘을 실천하고, 나름대로 양성평등을 실천하기 위해 5년이 넘는 결혼 생활 동안 요리를 제외한 모든 집안일을 자신이 하고 있다고 말했다.
위로를 받으려고 그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고민을 털어놓으니 친구는 "그냥 네가 다 해, 스트레스받지 말고"란다. 아버지는 오래전부터 그렇게 보고 자랐으니 바뀌기 쉽지 않을 거라는 것, 언니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몇 마디 더 보탰다.
"그리고 엄마가 돌아오면 너라도 앞으로 가사노동을 도와. 엄마가 여태까지 그걸 혼자 다 해 왔다고 생각해 봐. 나중에 네가 다시 일을 시작해서 가사노동을 할 사정이 여의치 않게 되면, 그 모든 걸 책임졌던 어머니께 진심으로 감사하다고 말해." 친구의 단호한 말에 멈칫하다가 나중엔 심술이 났다. 결론이 '너 혼자서 다 해'라니.
엄마의 마음도 이랬을까 오늘도 역시 나는 혼자 집안일을 했다. 아침에 일어나서 쌓인 설거지를 하고, 가만히 있어도 냄새가 나는 강아지 두 마리를 씻겼다. 청소기를 돌리고, 걸레로 바닥을 닦고, 강아지들을 씻기느라 더러워진 화장실을 청소했다. 복층으로 된 집을 청소하는 것만으로도 오전이 훌쩍 지나갔다. 어느새 몸에서는 땀이 배어 나오기 시작했다.
저녁이 되니 집을 나갔던 언니와 아빠가 돌아왔다. 밖에서 사온 먹거리들로 저녁을 해결하니, 또 설거지거리가 쌓였다. 정말… 해도 해도 끝이 없다. 언니는 저녁을 먹은 뒤 방으로 휙 하고 올라가 버리고, 아빠는 텔레비전 앞에 앉았다.
덩그러니 식탁에 남은 나는 눈물이 나려고 했다. 나 혼자 집안일을 한다는 '억울함'에 그런 것도 있지만, 내가 청소하고 치워놓은 것들에 대해 아무 말도 없는 것, 최소한의 미안한 기색조차 없는 것이 더 서러웠다. 그렇게 서러워하다가 엄마 생각이 났다. 엄마의 마음도 이랬을까. '이게 친구가 말했던 것이구나'라는 생각이 스쳐 지나가며 그제야 마음이 동했다.
내가 엄마에게 고맙다는 말을 한 게 언제였을까. "용돈은 아빠가 주니까 엄마는 안 줘"라던 엄마가 가끔 언니 몰래 용돈을 줬을 때, 신발이나 옷을 사줬을 때, 그리고 의무적으로 쓰는 어버이날 편지를 쓸 때. 내가 엄마에게 고맙다고 했던 건 그럴 때뿐이었던 듯하다. 매일 엎드려 걸레질하느라 망가진 엄마의 무릎에, "답답하다"며 고무장갑도 없이 설거지하고 걸레를 빠는 주름진 엄마의 손에 고마웠던 적이 있었던가. 아마 없었던 것 같다.
어떻게 엄마는 20여 년을 참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