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냄새> 겉표지
보리
2003년 10월, 19살인 유미씨가 고등학교도 졸업하기 전에 취업이 됐다. 고3 때 삼성전자에 취업이 된 것은 5월 7일. 사망한 젊은 엄마 이윤정씨와 똑같다. 19살 나이, 참 어린 나이다. 중3인 우리 집 큰아이보다 겨우 세 살 많은 나이에 삼성전자에 취업이 된 것이다.
그렇게 어린 나이에 취업이 된 유미씨는 부모 곁을 떠나 기숙사 생활을 시작한다. 졸업도 하기 전에 취업이 돼 유미씨 부모는 아마도 주변의 부러운 시선을 많이 받았을 것 같다.
유미씨가 입사하기 전엔 어떤 딸이었는지 묻는 작가의 질문에 아버지는 "착했지" 한 마디를 한다. 여느 부모처럼 황상기씨도 직장 생활이 힘들더라도 딸이 성실하게 일하길 바랬을 것이다. 유미씨 일기장엔 일이 힘들어서 퇴사를 하고 싶었지만 대학에 들어가라면서 취업을 끝까지 반대했던 엄마에게 너무 미안해서 퇴사는 못하겠다는 내용의 글이 나온다.
그런데 입사한 지 19개월이 됐을 때, 유미씨 부모는 "속이 메슥거리고 토하고 어지럽다"는 유미씨의 전화를 받는다. 황상기씨는 체한 줄 알고 병원에 가서 주사를 맞으라고 한다. 체한 줄 알고 간 동네병원에서 피에 이상이 있으니 큰 병원에 가보라는 말을 듣는다. 그렇게 찾아 간 큰 병원에서 유미씨는 백혈병이란 진단을 받는다. 19살에 입사해서 20개월 만에 백혈병 진단. 그 사이 유미씨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황상기씨는 딸의 치료에 열중하면서 계속 이에 대한 의문을 갖는다. 유미씨의 백혈병 진단 소식을 들은 유미씨 할머니는 "애를 몹쓸 공장에, 이상한 데 보내갖고 병에 걸린 거 아니냐"며 속상해 하셨다. 그리고 며칠을 식사를 못하시다가 돌아가셨다.
2005년 12월 유미씨는 다행히 골수 이식을 받는다. 수술 덕분에 몸이 좋아진 유미씨는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하지만 집은 병원과 마찬가지로 또 하나의 감옥이었다. 매일 락스로 소독하고 병균이 옮길까 봐 집안 식구도 밖에 나가지 못하고 이웃들도 집에 오지 못했다. 온 집안 식구들은 우울했다. 유미씨는 그때 "엄마, 나 죽었으면 좋겠어"하고 말한다. 그 소리를 들은 부모의 마음이 어떠했을까.
누군가의 엄마이자 딸이었던 사람들... 더이상 희생 없길겨울이 지나고 2006년 봄이 오면서 부모님은 우울해 하는 유미씨를 데리고 여기 저기로 꽃구경을 하러 다닌다. 사진 속 유미씨 얼굴이 정말로 앳돼 보인다. 그러던 중 유미씨와 같은 라인에서 근무했던 이숙영씨가 7월에 백혈병 진단을 받고 한 달 만에 사망했단 소식을 듣게 된다.
아버지는 회사 과장에게 산업재해 처리를 해 달라고 말한다. 하지만 회사는 펄쩍 뛰었다. 10월이 됐을 때 회사 사람이 집으로 찾아 왔다. 찾아 온 이유는 휴직기간이 끝났으니 사표를 내라는 거였다. 그간의 치료비를 주는 조건으로 결국 사표를 썼단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상태가 좋아졌던 유미씨는 며칠 뒤 백혈병이 재발하게 됐다. 그리고 치료비와 관련해서 아버지는 회사쪽 사람들과 싸우는 일이 많아졌다. 결국 그 속상한 마음에 아버지는 여기 저기 찾아가고 언론사에 유미씨 사연을 제보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