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자빈(황태자비) 출신인 순정효황후 윤씨, 순종황제의 부인이다. 서울 남산한옥마을에 전시된 사진이다.
김종성
조선시대 왕실 여성들 중에서 외모를 가장 중요시 하지 않았던 이들은 세자빈 출신이었다. 처음부터 왕비나 후궁으로 입궁한 여성들보다는, 처음부터 세자빈으로 입궁한 여성들의 외모가 비교적 떨어진 것이다. 조선시대 여성관(觀)을 살펴보면, 이 점을 이해할 수 있다.
오늘날에는 여성을 평가할 때 외모를 먼저 보고, 지성이나 품성은 그 다음에 본다. 고 다이애나 영국 왕세자빈이나 샤를렌 모나코 왕비를 거론할 때마다, 한국 언론에서는 그들의 수려한 외모부터 거론하는 경우가 많다.
조선시대 분위기는 달랐다. 조선시대에 여성을 평가하는 최고의 기준은 덕성이었다. 남자의 눈을 매혹할 만한 미모를 가진 여성보다는 어질고 인자해 보이는 여성에 대해 보다 높은 가치를 부여한 것이다. 다음으로 중시한 것은 지성이고, 외모는 맨 끝이었다.
이 때문에, 마음속으로는 섹시한 여성을 좋아하는 남자일지라도, 겉으로는 그런 속내를 드러낼 수 없었다. 외모를 따지는 것 자체가 인격적 부족을 스스로 드러내는 것이라고 인식되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지성·외모보다는 덕성을 중시하는 풍토는 왕비·후궁·세자빈 같은 왕실 여성을 평가할 때 훨씬 더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일례로, 제4대 세종의 부인인 소헌왕후 심씨는 실록에서 대단한 격찬을 받았다. 탁월한 덕성의 소유자라는 평가를 받은 것이다. 문종 2년 4월 1일자(1452년 4월 20일) <문종실록>에 따르면, 심씨는 어질고 착하고 인자하고 성스러운 여성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여성이 받을 수 있는 최고의 격찬을 받은 셈이다.
제11대 중종의 부인인 장경왕후 윤씨는 탁월한 지성의 소유자라는 평가를 받았다. 윤씨의 일생을 정리한 <장경왕후 지문>에 따르면, 그는 경전과 역사서에 통달한 지적인 왕후였다. 하지만, 지성미가 넘친다는 평판은 그다지 후한 평가는 아니었다. 덕성의 소유자라는 평가가 최고였다.
이런 사회 풍토는 왕이나 세자의 배우자를 선발할 때에 힘을 발휘했다. 지성이나 미모를 가진 여성보다는 덕성을 갖춘 여성이 왕비·후궁·세자빈으로 뽑힐 가능성이 컸던 것이다. 이런 분위기에 힘을 실어준 제도적 요인이 있었다. 신붓감을 간택하는 심사위원들이 여성들이었다는 점이다.
왕이나 세자의 어머니 혹은 할머니가 심사를 주도했기 때문에, 신랑 본인보다는 나이 든 여성들의 마음에 드는 후보가 뽑힐 가능성이 컸다. 이로 인해, 왕비·후궁·세자빈 자리는 원칙상 덕성의 소유자로 보이는 여성들에 의해 채워질 수밖에 없었다.
왕비·후궁·세자빈의 외모 차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