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논·마을 안 배꼽마당 하나 가득한 책장. 마을 어르신들이 드디어 이 곳 배곱마당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최방식
조금을 더 앉아있자니 방문자와 마당지기 탁자에 샌드위치가 하나씩 놓입니다. 학부모 한 분이 아이들이 배고플 때라며 음식(빵과 음료)을 준비해 가져온 것이었습니다. 지역 유기농 재료로 만든 '로컬·슬로우 푸드'입니다. 샌드위치 한쪽과 발효 음료수 한잔... 맛요? 더 말해 뭐하겠습니까?
컨테이너책방 한 귀퉁이. 방문객이 열정적 대화(?)에 지쳐 가는데도 아이들의 재잘거리는 소리와 놀이, 학부모의 발걸음은 멈추질 않습니다. 안되겠다 싶어 자리에서 일어나며 멋쩍게 "근처 식당이 없냐"고 물으니, 눈치 빠른 마당지기 "함께 갈게요"라고 가방을 챙겨듭니다. 방문자 꼬임에 말려 서너 시간 떠들었으니 목도 말랐을 겁니다.
마을 위·아래 두 개의 슈퍼가 있는데 위쪽으로 가잡니다. 시골이라 멀지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차로 불과 2~3분 거리. 중미산으로 향하는 어느 산중턱에 자리한 아늑한 가게. 안팎에 불이 다 켜져 있는데 주인은 안 보입니다. 마당지기에게 물으니 아래쪽 펜션도 운영하는데 거기에서 기르는 개가 새끼를 낳아 갔다 오는 중이라네요.
그렇게 계곡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풍광좋은 슈퍼에서 막걸리 판이 벌어졌습니다. 도시촌놈에게 가장 궁금한 건 역시 이주해 온 이들의 삶. 역시나 시기·질투를 부릅니다. "난 언제 이런데 살아보나요"라고 하소연하니, "그러지 말고, 당장 오세요"라고 염장(?)을 지릅니다.
지난 2년간에도 우여곡절이 많았답니다. "처음에는 주도하는 이가 없어 서로 눈치 보며 1년여를 보냈습니다. 그 땐 정말 힘들었죠. 주민들도 '저것들이 뭔 짓을 하는 지, 언제까지 저러는지 한 번 보자'는 식으로 뒷짐 지고 주시하고 있었고요. 다행히 학부모들은 지치지 않았습니다. 운영하는 공간도 유지했고요. 주민들도 결국 마음을 열더군요."
정배리 슈퍼에서 막걸리판 벌어지니술기운이 올랐을까요? 마당지기 목소리가 커집니다. 오래전 추억을 꺼내려니 가슴 속 생채기가 아린 모양입니다. 뒤풀이는 여행에 동행한 친구 신순봉씨(내일신문 퇴직)가 주도했습니다. 운전을 해야 하는 슬픈(?) 처지에 '방앗간'을 그냥 지나치려니 여간 고역(?)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