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지 없는 방>의 김성희 작가김성희 작가는 삼성 반도체 공장에서 근무하다 백혈병으로 숨진 황민웅씨의 아내 정애정씨를 주인공으로 이야기를 담아냈다. 김 작가는 무거운 주제를 우리 주변에 있는 사람의 이야기로 담담하게 그려냈다.
강민수
지난 4월 30일 오후, 서울 마포 홍대 근처의 북카페에서 김성희·김수박 작가를 만났다. 책이 나오기까지 걸린 시간은 무려 2년. 좌충우돌 진행된 집필작업을 설명하느라 인터뷰도 두 시간 넘게 걸렸다.
두 책의 시작은 2010년 3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2010년 2월 삼성의 비리를 고발한 김용철 변호사의 <삼성을 생각한다>는 책이 나온 이후, 윤구병 보리출판사 대표가 두 작가에게 삼성 반도체의 백혈병 문제를 다루자고 제안했다. '문제 생기면 내가 다 책임진다. 살 날이 얼마 안 남았다'는 말과 함께.
애초 집필 작업은 '캔디 프로젝트'로 명명됐다. 작품의 엄중성을 생각해서 일단 비밀리에 진행하기로 결정한 것. 출판사에서도 담당 편집자만 알게 했다. 혹시라도 이 작업이 새어나가면 집필이 중단될 수도 있다는 염려 때문이었다.
두 작가는 일단 돌아가신 분들의 가족을 만나 정보를 모으기 시작했다. 쉽지는 않았다. 가족들의 격앙된 감정 상태 때문에 꼬치꼬치 캐묻기 어려웠다. 그들의 감정을 낮추는 시간이 필요했다. 집필 작업의 70%는 유가족들과 투쟁한 시간이었다. 재판에도, 추모행사에도 함께했다. 점점 가까워질수록 신뢰가 생겼고 가족들도 서서히 마음을 열게 됐다. 김수박 작가는 "그러고 나서 보니 작가로서 책임감이 생겼다"고 말했다. 이 책임감은 책 수익금 일부를 삼성 백혈병 노동자들의 치료비에 보태는 데로 이어졌다.
"반도체 기술은 무어의 법칙, 노동현실은 70~80년대" 백혈병을 치료하는 데 수천만 원에서 1억 원이 넘는 치료비가 들었다. 항암치료, 몇 번에 걸치는 수술. 2, 3년이 넘는 투병기간. 때문에 삼성은 유가족들에게 '이 병은 개인의 질병일 뿐이다'는 말로 위로금을 제시했다. '병 주고 약 주는' 회유는 집요했고 몇몇 사람들은 삼성과 합의하기도 했다. 김성희 작가는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그 목숨을 팔아 돈을 받는다는 감정을 이입시켜 보면 삼성의 회유가 어떤 성격인지 쉽게 알 수 있다"고 답했다. 김수박 작가는 그런 과정을 지켜보면서 분노했다고 말했다.
"자식, 남편을 잃은 사람이 그 돈을 어떻게 받겠어요? 그 돈을 받아서 살림이 나아지겠어요? 나머지 삶은 인생이 인생이 아니에요." 삼성의 집요함에도 황상기씨와 정애정씨는 끝까지 버텼다. 그들은 반도체 백혈병을 산업재해로 인정받기 위해 행정소송을 벌였다. 2007년 근로복지공단에 산업재해 인정을 신청했지만 '백혈병 발병과 반도체 공정 사이의 인과관계가 없다'는 이유로 기각됐다. 그들은 행정법원에 항소했다. 결국 지난해 6월 서울 행정법원은 삼성전자 반도체 직원의 유가족 등 5명이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유족급여 및 장의비 부지급 취소 처분' 소송에서, 황상기-이선원씨에게는 승소 결정을, 정애정씨를 포함한 나머지 3명에게는 기각 결정을 내렸다. 절반의 성공이었던 셈이다.
그리고 근로복지공단은 지난달 11일, 삼성전자 온양공장 반도체 공장에서 5년간 근무한 김지숙(36)씨의 '혈소판감소증 및 재생불량성 빈혈'을 산업재해로 승인했다. 더디지만 힘겹게 하나씩 쌓아 올린 성과였다.
김성희 작가는 "반도체 기술은 무어의 법칙(마이크로칩에 저장할 수 있는 데이터의 양이 18개월마다 2배씩 증가한다는 법칙)처럼 빛의 속도로 빨라지는데, 산업 현장, 노동 현실은 70, 80년대 산업화 단계에 머물러 있다는 것을 삼성의 반도체 백혈병 문제를 보면 알 수 있다"라고 꼬집었다.
두 작가는 "무엇보다 삼성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김수박 작가는 "삼성이 3대 세습을 하는데 어느 국민이 좋아라 하냐"며 "이런 문제들을 털고 가지 않으면 영원히 국민에게 사랑받는 기업이 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의 관심도 물론 중요하다. 김성희 작가는 "삼성 제품 안 쓰는 사람이 없는데 삼성이 국민들 눈치 좀 보게 하자는 게 두 책을 펴낸 목적"이라며 "기업의 활동에 국민이 개입할 수 있는 공감대를 만들고 싶다"고 강조했다. 현재 우리가 쓰는 TV, 노트북, 휴대전화 등 첨단 제품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노동자들이 어떤 처우를 받는지, 그 제품을 만들다가 백혈병에 걸렸을 수도 있다는 사실. 두 작가는 그것을 알리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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