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용하고 있는 점자단말기. 글자를 점자와 음성으로 출력해 주며 텍스트파일, 워드, 아래아 한글의 편집은 물론 인터넷, 이메일, 라디오 수신 등이 가능하다.
신경호
그러나 정보화진흥원의 정보통신보조기기 보급사업이 장애인들로부터 마냥 환영만 받는 것은 아니다. 해마다 보급사업이 실시되면 이에 항의하는 장애인의 목소리가 높다. 가장 큰 문제는 적은 예산으로 시행하는 사업이다보니 어쩔 수 없이 일부 장애인을 선정하는 절차를 거치는데 이들 선정 과정에 불만의 목소리가 높다.
현재는 제품을 필요로하는 장애인이 신청을 하면 심사를 거치도록 되어 있다. 심사항목은 장애 등급, 경제적 여건, 제품의 활용 가능성, 필요도 등으로 점수를 부여하고 고득점순으로 선정하는 방식이다. 보조기기를 신청하는 장애인들은 경제적 곤란함을 입증하는 증명서, 그러니까 기초생활수급대상 증명서, 차상위계층 증명서, 직업 생활에 관련된 증명서(재직증명서, 안마사 등의 자격증 등), 재학증명서 등을 첨부해야 한다.
장애의 정도가 심할수록 경제적으로 어려울수록, 사회생활이나 학업등의 제품 필요성이 높을수록, 그리고 해당 제품을 실제 사용할 수 있는지(예를 들면 점자단말기의 경우 점자를 알고 있어야 사용이 가능하다)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는 것이다. 이런 선정기준은 매우 객관적이고 타당해 보인다.
그러나 실제 선정 과정에서 장애인들은 매우 불합리할 수 있다는 지적을 한다. 청주에 살고있는 시각장애인 A씨는 벌써 몇 년째 점자단말기를 신청하고 있으나 줄곧 떨어지고 있다.
"저는 현재 안마원을 운영하는 자영업자입니다. 그래서 기초생활수급권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계속 필요한 제품을 보급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점자단말기는 제가 살고 있는 충청북도에는 매년 1대만 배당되는 것 같은데 기초생활 수급권자가 받고 있습니다. 저의 경우 사업상 고객을 관리하거나 점포를 운영하면서 매우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받지 못하는데 반해 지난해 지원 받은 사람은 거의 장롱 안에 모셔두고 있거든요."
경기북부점자도서관에서 근무하고 있는 B씨도 같은 불만이다.
"정보보조기기 신청을 많이 해보았으나 수급권자가 아니라거나 안마사 자격증이 없다는 이유로 탈락을 한 적이 한두번이 아닙니다. 점자도서관에 근무하기 때문에 업무상 매우 필요한 기기임에도 기초생활 수급권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보급받지 못하는 건 정말 잘못된듯합니다."
시각장애인 3급인 C씨도 마찬가지. 현재 번역가로 왕성히 활동하고 있는 C씨는 번역을 위해 영어 사전을 많이 보는 편이라 글씨가 작은 사전을 확대해 모니터로 출력해주는 '독서확대기'가 필요하다. 그러나 그는 장애 3급이고 기초생활수급권자가 아니어서 우선 순위에 오르지 못하고 있다. 정보화진흥원의 보급사업에 여러 번 신청을 했다가 번번히 실망을 한 C씨는 300만 원 가까운 해당 제품을 자신이 구입해야만 했다.
고득점자가 여러 제품을 중복 지원받는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A씨는 "시각장애인들이 제일 선호하는 제품이 점자단말기이거든요. 그런데 이 제품을 지원 받은 사람이 그 다음해에는 데이지 플레이어를 받고 또 그 다음 해에는 바코드 인식기를 받는 것을 보면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듭니다"라고 불만을 토로했다.
또 선정 기준인 경제적 여건과 활용의 필요성은 모순되기도 하다. 학업에 필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기초생활수급권자는 재직증명서 등의 직업 생활에 필요한 증명서를 제출할 수 없고 직업 생활을 하는 사람은 기초생활수급권에 관련된 증명서를 제출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렇기 때문에 많은 장애인들은 사회 참여시의 필요성과 같은 다른 선정기준보다 경제적 상황을 먼저 고려하는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또한 기초생활수급권자는 다른 면에서도 다양한 혜택을 받기 때문에 사회 참여에 필요한 보조기기는 선정 기준을 바꿀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많다.
이런 과정에서 일부 장애인들은 보급받은 제품을 다른 사람에게 판매하기까지 한다. 특히 시각장애인들이 가장 선호하는 점자단말기의 경우 대당 500만 원이 넘는 고가이기 때문에 이를 비밀리에 거래하는 일이 잦다. 비밀리에 거래하면 약 100-150만 원의 거래 차액을 얻을 수 있다. 또 일부에서는 기초생활수급권자의 명의를 빌려 신청하는 사례도 드물지 않다. 이런 부작용을 막기 위해 몇 년 전부터 정보화진흥원에서는 '보급 사업 대상 제품을 양도하거나 매매를 하지 않겠다'는 서약서를 받고, 전수조사 등 사후관리를 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 관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는 않는듯이 보인다.
이번 취재 과정에서 만난 한 시각장애인은 이렇게 말했다.
"그냥 1년에 한 번 보급사업을 전개할 것이 아니고 연중 실시하고 본인부담금도 조금 높인다면 정말 필요로하는 사람만이 신청할 겁니다. 지금과 같이 1년에 한번만 실시하게 되면 이 기회를 놓칠세라 복권 사듯이 필요하지도 않은 사람이 무조건 신청부터 합니다. 또 보급 대상 제품이 몇만 원에서 몇백만 원까지 다양하기 때문에 우선은 고가제품부터 신청을 하거든요. 장애인 1인당 상한 금액을 두거나 실제 필요성에 관해 좀더 꼼꼼히 살펴보면 좋겠습니다."
실제 일본은 이런 사업을 '일상생활지원용품'이란 사업으로 지자체에서 연중 시행하고 있다. 연중 아무때나 신청할 수 있기 때문에 해당 제품을 필요로 하는 사람만이 신청을 한다. 그 만큼 예산의 낭비가 줄어드는 것이다.
또한 정보화진흥원의 보급 사업 외에도 여러 각도의 보조기기 지원이 이루어져야 한다. 현재 나사렛대학교 등 일부 대학교는 재학기간 중에 장애인 보조공학기기를 대여하고 있으며 장애인고용공단에서는 취업한 장애인에게 보조공학기기를 대여하거나 지원하는 사업을 실시하고 있다.
그러나 전체 장애인들이 이들 지원 사업의 대상이 되지는 못하고 있다. 또 일부에서는 대여 기기가 고장이 났을 경우 장애인 본인이 책임지고 수리하거나 변상해야 하기 때문에 대여를 포기하는 일도 있다. 이런 지원 사업에 대하여 보다 꼼꼼하고 배려있는 제도를 마련한다면 장애로 인한 불편함을 보조공학기술의 도움으로 다소나마 해결할 수 있다. 그런 노력속에 장애인 한 사람 한 사람이 사회 구성원으로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될 수 있다. <달팽이의 별> 주인공이 느리지만 천천히 사회와의 소통에 성공했고 시각장애인 판사가 법정에서 당당히 이 사회의 정의를 위해 판결을 내릴 수 있는 것처럼…
덧붙이는 글 | 본 기사는 일본 전문 뉴스 JPNews(http://jpnews.kr)에도 송고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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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는 1급 시각장애인으로 이 땅에서 소외된 삶을 살아가는 장애인의 삶과 그 삶에 맞서 분투하는 장애인, 그리고 장애인을 둘러싼 환경을 기사화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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