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형 공짜폰 세일'을 내건 서울의 한 휴대폰 매장(해당 매장은 기사 내용과 직접 관련 없음).
김시연
"아직 3GB나 남았는데 언제 다 쓰죠?"10년 넘게 2G 피처폰(일반폰)에 표준요금제만 고집해오던 이종속(가명)씨는 최근 최신형 LTE 스마트폰으로 바꿨다. 90만 원대 단말기를 거의 공짜에 구입하긴 했지만 3년 약정에다 3개월 동안은 월 6만2000원짜리 요금제를 유지하는 조건까지 붙었다. 지금 이씨는 남아도는 음성과 데이터 기본량을 어떻게 채울까 고민하고 있다.
이처럼 이동통신사 대리점들의 이른바 '공짜폰' 유혹에 넘어가 주체 못할 고가 요금제를 쓰는 사례가 요즘 흔하다. 앞으로 '단말기 자급제'가 뿌리내리면 어떻게 달라질까?
'공짜폰' 노예? 공단말기 사서 '유심' 골라 쓴다"오늘부터 스마트폰 30% 할인 들어갑니다." "우린 스마트폰 하나 사면 하나 더!"A전자와 B전자 사원들의 판촉 열기가 뜨겁다. 김자급(가명)씨는 요즘 휴대폰을 살 때 일부러 가전제품 양판점을 찾는다. 이동통신사 대리점에선 80만~90만 원대 고가 스마트폰에 비싼 요금제만 권하지만 이곳에선 10만 원대 피처폰에서 20만~30만 원대 보급형 스마트폰까지 마음 놓고 고를 수 있어서다.
"한 달 2만 원이면 음성 150분에 데이터 100MB!""5만 원 충전하면 1년 동안 373분 통화!" 단말기를 고른 김씨가 향한 곳은 유심(USIM; 범용 사용자 식별 모듈) 판매장. 이곳에선 기존 이통사뿐 아니라 MVNO(이동통신재판매사업자)에서 내놓은 각종 선-후불 유심 상품을 한눈에 비교할 수 있다. 그동안 후불 요금제만 써왔지만 요즘 통화량이 부쩍 줄어든 김씨는 기본료 부담이 없는 선불 유심을 골랐다. 방금 산 단말기에 유심 카드를 꽂은 순간 김씨는 이통사 '노예폰'에서 벗어나 '자급폰' 대열에 들어선 것이다.
단말기 자급제, '유통 혁명'-'찻잔 속 태풍' 엇갈려
5월부터 '단말기 자급제' 시대가 열린다. 이른바 '블랙리스트 제도(단말기 유통 개방 제도)' 도입에 따라 기존 이통사에 단말기 식별번호(IMEI)가 등록되지 않은 '공단말기'도 시장에서 자유롭게 사고 팔 수 있게 된 것이다. 휴대폰도 TV나 PC처럼 이통사를 끼지 않고 제조사가 직접 팔 수 있고, 중고폰이나 해외 단말기도 자유롭게 쓸 수 있다.
앞서 김자급씨 사례는 단말기 자급제가 뿌리내린 상황을 그린 가상 시나리오지만 먼 미래에 벌어질 일만은 아니다. 중고 휴대폰을 중심으로 공단말기 거래는 이미 활발하고 유심 전용 요금제도 이미 등장했다.
올해 1월 MVNO 사업을 시작한 CJ헬로비전은 공단말기 가입자를 위한 '유심 전용 요금제'를 선보였다. 표준 요금 기본료는 기존 이통사 절반 수준인 6000원이고, 기존 이통사 월 3만4000원 요금제(음성 150분, 데이터 100MB, 문자 200건)는 월 2만 원, 4만4000원 요금제는 3만 원으로 30~40% 정도 싸다.
기존 이통사들도 마지못해 유심 요금 상품을 선보이고 있다. KT가 단말기 자급제 시행에 맞춰 30일 선보인 유심 선불 상품은 5만 원을 충전하면 망내 통화 200분을 포함해 음성 통화를 최대 373분까지 쓸 수 있다. 유심 후불 요금제 가입자는 요금 20%를 적립해 새 단말기를 살 때 할인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