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치원에서 올라온 블로거 '부추꽃청'이 싸온 미역과 시래기나물 한 봉지.
최지용
무엇보다 희망식당은 아무리 유명한 맛집도 주지 않는 '마음'을 제공한다. 지난해 경험한 두 번의 '아름다운 연대'를 기억하는가? 새해 첫날 해고당한 홍익대학교 청소노동자들의 싸움에서 시작한 이 연대는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을 사회적 살인인 '정리해고'에서 구출하기 위한 희망버스로 이어졌다. 그때와 같은 싹이 이곳에서 피어난다.
이날 식당의 첫 손님은 조치원에서 올라온 블로거 '부추꽃청'(필명)이었다. 오전 7시 30분 기차를 타고 일찌감치 올라왔지만 '상도역'을 '상계역'으로 잘못 알고 서울 끄트머리까지 올라갔다 내려온 길이다. 땀을 흘리며 그는 가방에서 말린 미역, 가시오가피순, 시래기 한 묶음을 꺼내 놓았다. 직접 만들었다는 도자기도 선물했다.
멀리까지 찾아오게 된 계기를 묻자 그는 "남편이 철도노조에 있는데 예전에 파업할 때 경찰이 헬기까지 동원해 노동자들을 해산시키던 모습이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았다"며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의 문제는 그들만이 아닌 모든 노동자의 문제"라고 말했다.
상계역을 헤매다 온 그에게 또 다른 사연도 있었다. 완전히 잘못된 곳에서 헤매던 그는 작은 카페에 들어가 희망식당을 물었고 그 가게 주인이 인터넷 검색으로 상도역을 알려줬다. 그러면서 희망식당에 전해 달라며 봉투 하나를 건넸다. 그 봉투에는 2만 원이 들어 있었다. 카페주인은 희망식당을 몰랐다며 미안해했다고 한다.
그 뒤로 손님은 계속 이어졌다. 쌍용자동차노조와 일일 호스트 이선옥 작가의 지인들도 많았지만 트위터를 통해 소식을 듣고 찾아온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혼자 식당에 들어선 김경서(18)씨도 그랬다. 그는 식당에 들어서자 바로 "희망식당에 왔다"는 인증 트윗을 날리고 자리에 앉았다. 아직 고3이지만 "트위터 친구들과 쌍용차 이야기를 많이 했다"는 그는 "사람들의 관심이 많아져서 (정리해고가) 빨리 해결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노량진학원에서 교사 임용시험을 준비하다가 고향으로 내려간다던 20대 여성은 "마지막 식사를 희망식당에서 하려고 왔다"고 말했다. 큰 짐을 여러개 들고 선 그는 "희망식당에서 '희망'을 먹으러" 왔다고 한다. 희망식당을 그에게 소개했다는 함께 온 친구는 "경제발전이라는 이유로 희생해온 노동자들인데 회사가 어려워 고용하지 못한다는 말은 어불성설"이라며 "계속 희생시켜놓고 또 희생하라고 말하는 사회가 잘못"이라고 말했다.
점심이 한참 지난 오후 식당을 방문한 프로레슬러 김남훈씨는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은 반드시 승리할 것으로 믿는다. 파이팅!"이라고 응원했다. 그는 "희망식당의 장점은 무엇보다 메뉴를 고를 필요가 없다는 점"이라며 "일요일에 뭐 먹을까 고민하지 말고 그냥 희망식당에 오면 맛있는 음식을 알아서 차려준다"고 말했다. 그는 음식값으로 5천 원이 아닌 5만 원짜리 지폐 두 장을 '실수로' 꺼내 웃음을 주기도 했다.
이날 하루 손님을 책임지는 역할을 맡은 이선옥 작가는 "이곳에 사람들이 온다는 것 자체가 큰 힘이 된다"며 "여기가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의 가게이고 해고노동자가 주방장을 하는 곳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쌍용자동차 문제를 이야기하면 각자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대한문에 차려진 분향소와 이곳 희망식당에 관심을 가지고 찾는 것만으로도 큰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희망식당 입구에는 '밥을 구하다가 밥이 되어버린 우리 삶을 희망으로…'라고 적힌 현수막이 걸려 있다. 밥이 모자랐던 사람들이 밥통 앞에 서서 연신 빈 밥그릇을 채운다. 비록 노동자의 삶이 무엇의 '밥'이 돼 버렸는지 모르겠지만, 이곳에서는 희망이 '밥'이 되고 있는 게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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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최초... 별 다섯 개 식당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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