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모비딕'의 두 주인공 퀴퀘그(바이올린, 지현준)와 이스마엘(피아노, 신지호 분). 악기로 화음을 맞추며,때론 배틀을 벌이며 점점 친해져 간다.
문성식 기자
거대한 바다라는 공간을 상대로 음침하고 퀘퀘한 배 안에서 남자들의 생존과 우정이 펼쳐진다. 뮤지컬 <모비딕>은 극중 인물의 성격에 맞게 악기를 배치하였다. 주인공 이스마엘(신지호, 윤한)은 선율과 화음 모두 가능한 피아노로 이야기를 설명한다. 이스마엘과 친구가 되는 작살잡이 퀴퀘그(KoN,지현준)는 바이올린을 연주하며, 피아노의 이스마엘과 화음을 주고받으며 때로는 대결로 서로를 알아간다. 바이올린 활이 작살을 연상시킨다.
위협적이고 음산한 바다를 연상시키는 저음의 첼로는 선장 에이헙(황건)이다. 1등 항해사 스타벅(이승헌,유승재)은 현란한 기타를 연주하고, 선장에게 대항하지만 결국 선장에게 연민을 품게 된다. 자만심으로 가득찬 3등 항해사 플라스크의 트럼펫과 플루겔 혼(유승철), 클라리넷과 색소폰(조성현)은 먼 바다를 관측하는 망원경도 되는 등 관악기의 사용이 재미있다. 더블베이스는 2등 항해사 스텁(황정규)과 극의 모티브가 되는 흰 고래 모비딕을 표현하며 저음악기답게 모두를 포용한다.
자연스러운 음악과 함께하는 이야기에 빠져들 즈음, 다시 한번 이 이야기가 남자들의 이야기임을 새삼 깨닫게 된다. 남자들만의 이야기인데도 전혀 지루하지 않은, 사실 남자 관객들에게는 더 와닿을 수도 있는 박진감 있는 갈등구조가 배우의 노래만이 아닌 악기의 연주와 뮤지컬 넘버로 함께하기 때문에 시종일관 지루할 틈이 없다.
특히 에이헙 선장 역의 황건이 첼로를 연주할 때면 정말로 바다 한가운데 떠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그의 카리스마 있는 첼로 저음과 비브라토는 먼 음산한 바다와 풍랑을 연상시키는데, 연주를 할 때 그의 눈빛은 특히나 공허하고 예지력으로 가득 차 보인다. 다른 배우들이 악기 전공자들인데 반해 혼자 비전공자로 배역을 소화하면서도 전혀 어색함이 없이 첼로의 특성으로 선장의 캐릭터를 드러내는 모습이 대단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