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장면 한 그릇으로 잠시 옛 향취에 젖다

'4.11총선 투표 인증샷' 당첨금으로 자장면 파티를 했습니다.

등록 2012.04.25 15:48수정 2012.04.25 2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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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1총선 투표 인증샷 4월 11일 오후 2시쯤, 90을 바라보는 세 분 할머니들과 함께 투표를 하고 투표소 입구에서 인증샷 사진을 찍었습니다. 이 할머니들은 또 다시 총선 투표를 할 수 있을지 모르는 노인 분들입니다. 그들의 표정이 나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해맑고 진지합니다.
4.11총선 투표 인증샷4월 11일 오후 2시쯤, 90을 바라보는 세 분 할머니들과 함께 투표를 하고 투표소 입구에서 인증샷 사진을 찍었습니다. 이 할머니들은 또 다시 총선 투표를 할 수 있을지 모르는 노인 분들입니다. 그들의 표정이 나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해맑고 진지합니다.이명재

오늘 점심은 자장면이었습니다. 한 마을에서 영업을 하고 있는 중국 음식집 '예원'이 우리의 점심 식사 장소였습니다. 마침 박 사모가 세미나 참석으로 인해 노년부 예배와 함께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여러 모로 잘 되었다 싶었습니다.


점심 식사를 사택에서 준비하지 못할 사정이 생길 때는 가끔 외식을 합니다. 할머니들은 자장면을 들면서 옛 정취를 느껴보고 싶어하는 것 같습니다. 자장면은 제가 어릴 때만 해도 우리의 우상이었습니다. 기쁜 날, 자장면 한 그릇은 우리의 마음을 채워주기에 족했습니다.

오늘 자장면은 또 다른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소개할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지난 4월 11일은 국회의원을 뽑는 총선의 날이었습니다. 오전까지만 해도 투표율이 저조하다는 소식이 뉴스 속보로 연속 흘러나왔습니다. 마침 수요일 노년부 낮 예배가 있는 날이어서 투표를 하지 못한 할머니 세 분과 함께 투표장을 찾았습니다.

마을에서 꽤 떨어져 있는 한 초등학교에 마련된 투표소까지 노인 분들이 일부러 가기엔 어려움이 따릅니다. 그래서 제 차를 함께 타고 가서 투표를 했습니다. 80 중반을 지나 90을 바라보고 있는 할머니들입니다. 저는 투표소에 가면서 이 분들이 다시 국회의원 선거를 할 수 있을까 하고 생각에 잠겼습니다.

한 할머니에게 마음을 떠보았습니다. 누굴 찍으실 거냐고 물어보았습니다. 할머니는 비밀이라며 입을 꼭 다물었습니다. 비밀투표의 원리는 나이의 많고 적음을 떠나 다 인지하고 있는 상식입니다. 우리 지역(김천시)은 여야 한 사람씩 두 사람이 출마했기 때문에 싱거운 투표가 되고 말 것이라고들 했습니다.

투표를 마치고 투표 때마다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인증샷'에 동참하고 싶은 생각이 일었습니다. 나는 투표하기 위해 먼 걸음을 한 아들과 같이 투표소 앞 표지판을 배경으로 사진을 한 컷 찍었습니다. 또 투표소를 나와 교문 안쪽 투표소를 알리는 화살표 표지판 앞에서 할머니들과 함께 역시 한 컷을 찍었습니다.


그날 밤에 우연히 인터넷 신문 <오마이뉴스>를 보다가 '투표 인증샷'을 엄지 뉴스로 보내달라는 '알림'을 읽었습니다. 재미 삼아 아들과 함께 찍은 것과 할머니들과 찍은 사진을 <오마이뉴스>로 보냈습니다. 의미 있는 인증샷으로 선정되면 3만원의 상금도 있다고 덧붙여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잊고 있었습니다.

며칠이 지날 때였습니다. <오마이뉴스> '투표 인증샷' 담당 기자로부처 전화가 왔습니다. 제가 보낸 사진이 투표 인증샷 공모에 뽑혔다는 것입니다. 당첨금을 보내려고 하니 개인 신상과 통장 번호를 알려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이메일로 사실을 알렸는데 열어 보지 않은 것 같아 전화를 했다는 것입니다.


그 당첨금으로 오늘(4월 25일) 인증샷의 모델이 된 할머니들과 함께 중국집 '예원'에서 자장면으로 식사를 한 것입니다. 교회 사정을 뻔히 알고 있는 할머니들은 제가 식사를 산다고 하면 극구 만류하십니다. 대접 받은 것과 진배 없다며 사양을 하십니다. 그래서 오늘은 제가 예배 말미 광고 시간에 자장면을 먹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고 기쁘게 동의를 얻어냈습니다.

당첨금의 많고 적음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기분입니다. 앞으로 이런 일이 자주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들을 얘기했습니다. 할머니들은 어릴 때 친구들과 함께 자장면 먹을 때의 기분을 되살리려는 듯 남기는 것 하나 없이 말끔하게 해치웠습니다. 아내가 출타하고 없는 날, 겸사겸사 우리의 필요를 잘 채워준 자장면이었습니다. 감사할 일입니다.
#4.11총선 #투표인증샷 #엄지뉴스 공모 #자장면 파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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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 향기 그윽한 김천 외곽 봉산면에서 농촌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세상과 분리된 교회가 아닌 아웃과 아픔 기쁨을 함께 하는 목회를 하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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