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위를 얇게 켜서 마당과 지붕을 만들었다. 지붕의 끝(용머리)을 보면 돌과 돌의 구명을 뚫어 흘러내리지 않게 고정시켰다. 언뜻보면 지붕에 판자를 얹은 것처럼 보이지만 납작한 돌이다.
오문수
간드룩1로 올라가는 길. 가이드 '솜'이 안내하는 길을 따라 동네로 접어들었다. 돌계단을 올라가니 게스트하우스가 나온다. 이런 곳에 사립학교라니! 100m 떨어진 곳에는 공립학교가 있다. 가이드인 솜 얘기로는 "자원이 없고 가난한 네팔인들은 자녀 교육에 사활을 건다"고 한다.
가이드 '솜' 두 딸을 훌륭하게 키우고 싶어 한국 가고파 네팔에서는 딸을 시집보낼 때 시댁에 금패물과 혼수용품을 듬뿍해가지고 가지 않으면 구박을 당하거나 두들겨 맞기까지 하기 때문에, 딸만 둘이고 가난한 자신은 걱정이란다. 어떻게 해서든지 두 딸을 훌륭하게 키워 그런 걱정 안 하게 하고 싶다는 솜. 딸들을 훌륭하게 교육시키려면 돈이 필요하다며 한국에 가서 돈을 벌고 싶단다. 그동안 집을 사려고 모아뒀던 돈은 의술이 서투른 의사가 아내의 제왕절개 수술을 잘못해 치료비로 써 버렸다.
네팔인들이 신성시 여겨 절대 올라가지 않는다는 마챠푸챠레의 4천미터 바로 아랫마을에 살았던 그는 집에서 학교까지 12킬로미터를 매일 걸어다녔다. "내려갈 때는 괜찮았지만 올라가는 한 시간 반은 배고프고 힘들었다"고. 가난해 12살 때부터 포터로 일하다. 23살에 첫번째 가이드 경험을 했다.
당시 영어를 잘 몰라 고민했는 데 일본인 아가씨를 안내하게 됐다. 게스트하우스에서 아가씨가 팬케이크를 주문해달라고 했는데 잘못 알아들어 '블랭킷 블랭킷"하다가 담요를 듬뿍 갖다줬던 해프닝을 얘기하며 함께 웃었다. 다행이 일본 아가씨도 영어를 잘하지 못해 서로 몸짓으로 통해 어려움을 넘겼다고 너스레다.
사립학교로 쓰다가 필요하면 게스트하우스로 변신하는 숙소에는 방이 네 개가 있고 바로 아래에는 지름 15m나 될까 말까한 운동장이 있다. 돌로 쌓아올린 아래쪽에는 대나무를 엮어서 7~8미터쯤 올린 방책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