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친의 투표올해 연세 89세인 내 노친도 지난 '4.11총선'에 참여, 국민주권을 행사했다.
지요하
4.11 총선은 결국 이명박 정권의 승리로 돌아갔다. 대부분의 국민은 박근혜의 승리라고 말하지만, 일단은 이명박의 승리라고 봐야 한다. 이명박은 새누리당에 감사를 표할 정도로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다. 그는 국민의 심판을 모면했고, 그를 심판하고자 했던 이들이 오히려 심판받은 가치전도 현상 속에 앞으로 국회 청문회에 설 일도 없게 되었다.
4.11 총선은 또한 이명박의 낙하산 부대에 장악된 지상파 방송과 수구 족벌 언론의 승리이기도 하다. 단순한 승리가 아니다. 앞으로도 지상파 방송의 나팔과 수구 족벌 언론의 마법을 잘 작동시키면 8개월 후의 대선뿐만 아니라 그 후의 선거에서도 얼마든지 승리할 수 있다는 미래의 가능성까지도 확보한 것이다. 이를 위해 지상파 방송과 수구 언론의 '마법 프레임'을 더욱 정교하게 가다듬어 나갈 것이다.
온갖 실정과 악행에도 불구하고 위정자가 국민의 심판을 모면하고 면죄부를 받은 상황은 앞으로도 그들을 더욱 담대하고 교활하게 만들 것이 분명하다. 앞으로 저들이 무슨 짓을 해도 국민이 심판하기는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오늘날 박근혜의 승리는 이명박과 수구 족벌 언론의 승리까지 내포한다는, 그리하여 장차 새로운 독재가 도래할 가능성까지 있다는 것을 대다수 국민이 깨닫기는 어렵다. 설령 깨닫게 된다 해도 그때는 이미 늦을 것이다.
수구 족벌 언론의 마법에 걸려든 국민은 어떤 상황 앞에서도 '물음표'를 떠올리지 않는 사람들이다. 아예 의식 안에 물음표가 존재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전후좌우에 대한 통찰능력도 없다.
수구 족벌 언론의 주술과 마법의 성 지난 4.11 총선 기간에 많은 사람을 만났다. '김용민 막말'을 문제 삼는 이들이 많았다. 대개는 '막말'이라는 단어에만 매달리는 본새들이었다. 그 막말의 내용이 무엇인지, 언제 어디서 어떤 연유로, 또 무슨 뜻으로 한 말인지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고, 관심도 없었다.
또 김용민의 8년 전 막말과 거의 같은 시기에 한나라당 국회의원들이 '환생경제'라는 연극 놀이 속에서 낭자에게 퍼질러놓았던 차마 입에 담지 못할 막말들, 그 조잡하고 추악한 연극을 보며 박근혜가 박장대소한 사실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듣고 알게 되더라도 죽일 놈은 여전히 김용민뿐이었다.
민주당이 '빨갱이 세력'과 제휴해 민주통합당을 만들더니 '빨갱이 사상'을 가진 통합진보당과 연대했다는 말도 있었고, 통합진보당의 핵심세력 속에는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하 전교조)도 있다며 이를 부정적으로 보는 말도 쉽게 들을 수 있었다. 전교조를 불온시하는 수구 족벌 언론의 주술에 걸려 부정적으로 말할 뿐, 전교조가 추구하고 지향하는 교육목표가 무엇인지 제대로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전교조의 전모와 진면목을 제대로 알아봐야 한다는 생각조차도 없었다. 현직 교사인 아내를 전교조에 참여시키고 있는 나조차도 어디서부터 전교조를 설명해야 할지 모를 정도로, 전교조를 '빨갱이 집단'으로 인식하는 사람들에게서 나타나는 수구 족벌 언론의 마법은 강고하고도 심대했다.
함부로 '빨갱이' 낙인찍는 천박한 세상수구 언론의 오랜 주술은 큰 효과를 발휘해서 오늘 우리는 '종북좌파'니 '빨갱이'니 하는 언어도 너무나 쉽게 접할 수 있게 됐다. 4월 11일 우리 가족은 투표를 마치고 단골 음식점에 들러 칼국수로 점심을 먹었다. 우리 가족의 옆자리에는 내 초등학교 동창 친구들 세 명이 먼저 와서 막걸리를 마시고 있었다. 어떻게 하다 제주해군기지 얘기가 나오고 북한의 미사일 얘기도 나오게 됐다.
그들은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 시절에 너무 많이 퍼준 탓에 북한이 미사일까지 만들어 우리를 위협한다고 했다. 참지 못한 동생이 끼어들었다. 동생은 "조중동의 거짓과 수구논리에 갇혀 사는, 미래를 책임질 수도 없는 늙은이들 때문에 나라의 장래가 어둡다"고 말했다. 조금은 돌발적이고 비약적인 얘기였다.
그러자 한 친구가 "그렇다면 너도 빨갱이다!" 하고 외쳤다. 그 말에 흥분한 동생이 벌떡 일어나서 "당신이 뭔데 나한테 빨갱이라고 하느냐. 내가 어째서 빨갱이냐"며 거칠게 대드는 바람에 내가 황급히 일어나서 진정시키느라 애를 먹었다.
더 이상 큰일은 벌어지지 않았지만, 50대 초반의 고난도 용접기술자인 동생은 나보다 더 마음이 괴로운 것 같았다. 일부 사람들의 입에 '빨갱이'라는 말이 붙어있다시피 하고 너무도 쉽게 표현하는 상황에 동생은 기가 막힌다고 했다.
생각해보면 너무도 천박한 세상이다. 걸핏하면 '좌파'니 '종북'이니 하는 말을 입에 올리며 그 말의 의미와 진위, 그런 말을 함부로 사용해도 되는지에 대한 숙고 따위는 전혀 안중에 없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그게 다 수구 족벌 언론이 부린 마법의 영향임을 쉽게 알 수 있다. 그래서 학력과 상관없이 우리 사회에는 중학생 정도의 사고력을 지닌 사람들로 넘쳐난다.
일 년 내내 책 한 권 읽지 않는 사람들, TV나 보고 수구 언론의 손아귀 안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이 '대중'을 형성하는 무지와 단순함, 편견, 오해의 숲 속에서 나는 오늘도 초등학생 시절의 교실 풍경을 떠올린다. 결석한 아이들 때문에 제시간에 출석한 아이들이 덤터기로 선생님의 꾸지람을 들어야 했던 상황. 그것을 생각하면 괜히 눈물겹다.
하지만 눈물겨운 그 심정이 내 몫이고 자산이며 하늘의 은총임을 믿는다. 그런 믿음으로 더욱 힘들어진 오늘을 꿋꿋하게 살아가고자 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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