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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성직업병피해자 한혜경 후원음악회 포스터. 혜경 씨와 어머니의 희망이 꽃처럼 환하게 피어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 이현정
이야기, 한혜경
1995년 10월, 고3 때 혜경씨는 삼성전자 기흥공장에 생산직으로 들어갔습니다. 집안 형편이 넉넉하지 않았기 때문에요. 입사 당시 혜경씨는 매우 건강했어요. 포동포동한 볼 살을 미워했을 겁니다. 혜경씨는 6년 동안 LCD 모듈과에서 인쇄회로기판 납땜을 하는 업무를 맡았습니다.
주야 교대근무를 했고 하루 8~12시간씩 일했습니다. 건강하던 혜경씨 몸에 이상이 생겼습니다. 입사한 지 3년이 지나자 생리가 완전히 없어졌습니다. 주변 동료들도 혜경씨와 같은 고통을 호소했다고 합니다. 몸이 점점 안 좋아진 혜경씨는 결국, 2001년 8월에 일을 그만두고 쉬었지만 몸은 나아지지 않았어요. 걸음걸이가 부자연스러워졌고, 시력도 점점 나빠졌습니다. 2005년 10월, 의식을 잃고 쓰러져서야 몸에 뇌종양을 키우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바로 종양제거 수술을 받았지만 시력과 보행, 언어에 장애가 생겼습니다. 장해1급 판정을 받았죠. 그해 혜경씨의 나이는 겨우 스물여덟이었습니다.
스물여덟... 정말 꽃다운 나이잖아요. 어눌해진 말, 마음처럼 안 움직이는 몸, 울어도 나오지 않는 눈물...... 혜경씨도 엄마도 참 많이 울었습니다.
혜경씨는 자신의 병이 삼성전자에서 일하다가 생긴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납, 플럭스, 유기용제 등 당시에는 전혀 알지 못했던 유해물질을 보호구도 없이 다뤘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기억합니다. 혜경씨가 주로 했던 일은 솔더크림을 회로기판 표면에 바르는 것이었어요. 화학약품 때문에 늘 냄새가 지독했다고 합니다. 특별한 보호장구 없이 얇은 비닐장갑을 끼고 일했습니다. 솔더크림에는 납 성분이 들어있었지만 누구도 납이 위험하다는 얘기를 해주지 않았어요.
세 글자, 불. 승. 인
2009년 3월 24일. 혜경씨는 근로복지공단 평택지사에 산업재해보상보험 최초요양급여신청을 접수했습니다. 8개월이란 긴 시간이 흐른 2010년 1월 15일, 혜경씨에게 결과가 통지됐어요. '불. 승. 인' 사물이 둘로 보이는 복시 증세를 가진 혜경씨에게도 '불승인' 세 글자는 선명했습니다. 근로복지공단의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가 혜경씨 병은 작업환경과 관련성이 없다고 판단한 겁니다.
혜경씨는 이해가 안 됐어요. 건강했던 자신과 일하면서 조금씩 몸이 망가졌던 과정을 기억하는 혜경씨는 불승인 결과를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고민 끝에 그해 4월 14일 심사청구를 넣었습니다. 4개월 뒤 또 불승인 통지가 날아왔습니다. 10월에는 노동부 산재보험재심사위원회에 재심사를 청구했습니다. 이번에는 그리 오래지 않아 불승인 소식을 들었어요. 이대로 주저 앉아야할지, 고민이었습니다.
"퇴사 뒤의 발병은 일하다 걸렸다고 말할 수 없다"는 삼성의 주장에 고개를 저었습니다. 자신이 입은 피해를 세상에 알리지 못한다면 또 다른 혜경이가 나타날 것 같았죠. 2011년 4월. 혜경씨는 서울행정법원에 "근로복지공단의 산재보험 부지급 결정을 취소해 달라"는 소송을 제기합니다. 앞으로 얼마나 더 오래 싸워야할지 모르지만 희망을 갖기로 했습니다. 작년 6월에 삼성반도체 기흥공장에서 일하다 백혈병에 걸려 사망한 고 황유미, 고 이숙영씨가 행정소송에서 이긴 사실이 큰 힘이 되었습니다. 지난 10일 있었던 삼성전자 반도체공장에서 일했던 노동자의 혈액암 산재인정도 희망으로 다가왔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