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살인사건, 동네 사람들도 반성해야

[주장] '나만 아니면 된다'는 무관심이 불러온 참극

등록 2012.04.18 20:18수정 2012.04.18 20:18
0
원고료로 응원

조현오 경찰청장이 9일 서울 미근동 경찰청에서 지난 1일 수원에서 발생한 20대 여성 살해사건 관련 유가족을 면담한 후 고개숙여 사죄하고 있다. ⓒ 연합뉴스


지난 4월 1일 벌어진 '수원 20대 여성 살인사건'은 현재 우리 사회의 현주소를 그대로 보여준, 매우 충격적인 사건이다. 비록 4·11 총선에 가려져 조현오 경찰총장의 사퇴와 함께 유야무야 넘어가고 있는 중이지만, 사건은 그 내용 자체만으로도 매우 충격적이었으며, 또한 안일하게 대처했던 공권력의 무책임한 모습은 사람들을 공황상태에 빠뜨리기 충분했다.

술김에, 어깨를 부딪친 뒤 욕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여성을 성폭행하고 살해한 뒤 시신을 토막 냈다는 범인(CCTV 확인 결과, 범인은 자신의 집 앞 전봇대 뒤에 숨어 있다가 여자를 납치한 것으로 드러남)과, 성폭행과 살해 위협에 두려워했을 여성이 112로 전화를 걸어
신고를 했음에도 제대로 대응하지 못해 피해 여성을 죽음까지 이르게 한 경찰. 도대체 우리 사회는 왜 이런 괴물을 길러내고 방치하고 있으며, 또 경찰은 왜 이렇게 무능하고 안일한 것인지.

'살인의 추억' 때와 별반 다르지 않은 경찰의 모습

처음 이 사건을 듣고 내가 떠올린 것은 영화 <살인의 추억>이었다. 하필 사건이 일어난 수원이 영화의 모티브가 되었던 '화성연쇄살인사건'의 화성과 가까운 것도 그 이유겠지만, 사건의 잔혹함이나, 무엇보다 언론에 보도된 경찰의 수준이 영화에서 묘사되었던 쌍팔년도의 그것과 크게 다를 바 없었기 때문이었다.

112 신고를 하며 거의 정확한 주소를 말했음에도 즉시 대처하지 못하고 주소를 다시 물어보는, 휴대폰 추적을 했음에도 결국에는 13시간 만에 범인을 잡을 수 있었던 경찰. 과연 그들은 20년 전과 무엇이 달라진 걸까?

영화는 이와 관련해 당시 공권력이 시위진압 등에 투입되느라 본연의 업무인 치안에 신경을 쓸 수 없었다는 사실을 재조명하는데, 이와 같은 문제제기는 이번 사건에서도 유효하다. 어찌 그렇지 않고서야 피해여성이 "아저씨 죄송하다"고 외치는 소리를 휴대폰 너머에서 듣고도 부부싸움인 줄 알았다고 변명할 수 있을까.

요컨대 이번 사건은 현재 우리 사회의 병리적인 문제점과 함께 공권력의 수준도 적나라하게 드러낸 사례로 기록될 것이다. 피해자가 신고를 해도 늑장대응으로 일관해 꽃다운 목숨을 잃게 만드는 경찰. 그것이 현재 우리 사회의 공권력의 수준이다.


왜 사람들은 그녀를 적극적으로 구하지 않았나

영화 <살인의 추억>의 한 장면 ⓒ 싸이더스


점점 늘어가는 사이코패스들과 태만한 경찰의 조화. 그러나 이번 사건이 많은 이들에게 끔찍하게 회자되는 것은 이외에도 다른 이유가 있기 때문인데, 그것은 바로 이 사건에 목격자가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생각해보자. 술에 취한 범인은 오후 10시 30분께 피해 여성을 납치해 집으로 끌고 들어갔고, 집 안에선 밖에서 들릴 만큼 큰소리가 났다. 신고자의 증언에 따르면 납치 장면을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그 다투는 소리로 미루어 부부싸움인가 생각할 정도였다지 않은가.

따라서 그녀의 납치 현장을 아무도 보지 못했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당시의 CCTV 화면을 보면 범인이 피해 여성을 납치하던 시간 때 주변에 행인들도 있고 차도 왕래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즉, 사람들은 어떤 여성이 한 남자에게 폭행을 당하며 끌려가고 있었는데도 외면했던 것이다. 도대체 왜 사람들은 적극적으로 그녀를 구하지 않았으며, 신고조차 않은 것일까?

물론 경찰과 몇몇 목격자들은 그들의 다툼이 단순히 부부싸움인 줄 알았다고 증언했지만 그것은 비겁한 변명일 뿐이다. 부부싸움이라고 한들 여성의 목숨이 위험한 지경이라면, 그것은 제3자라고 해도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경찰은 "아저씨, 죄송해요"라는 마지막 발언도 듣지 않았나.

결국 목격자가 있었음에도 이번 사건이 일어난 이유 중 하나는 나와 관련 없는 일에는 절대 개입하지 않겠다는, 이 시대 개인들의 이기심 때문이다. 나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으면 눈을 질끈 감아버리는 그 무관심이 목숨을 건 싸움을 부부싸움으로 보이게 만들었으며, 자신은 단지 부부싸움으로 오해했을 뿐이라는 자기합리화를 가능케 만든 것이다. 불의를 앞에 두고도 차마 지적하지 못하는 비루하고 비겁한 개인들.

'개인의 무관심'이 부른 비참한 사건

이와 관련해 개인적으로 떠올린 것은 KBS의 <1박2일> 멤버들이 주구장창 외쳤던 바로 그 구호, "나만 아니면 돼"였다. 그 구호를 브라운관을 통해 처음 봤을 때 느꼈던 뜨악함이란.

사실 그것은 충격이었다. 개인의 참여를 가장 소중한 가치로 내걸어야 하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그와 같은 구호가 공영방송을 통해 유통되고, 또 많은 사람들의 입에서 오르내린다는 것 자체가 비극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이번 사건도 '나만 아니면 된다'는 식의 사고방식에서 연유된 것 아닌가.

따라서 현재 우리에게 절실한 것은 성숙한 시민의식이다. 일면식 하나 없는 사람이라도 같은 공동체를 이루고 있는 구성원이라면 서로 연대할 수 있는 시민의식이 필요하다. 타인의 삶이 자신의 삶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는 깨달음과 이를 바탕으로 한 적극적인 연대. 그것만이 이번 사건 발생에 일조한 '개인의 무관심'을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억울하게 죽어간 20대 여성의 명복을 빈다. 그리고 그와 함께 이 사회의 시민의식이 좀 더 성숙해지기를 바란다.
#수원20대여성살인사건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물류와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을 했었고, 2022년 강동구의회 의원이 되었습니다. 일상의 정치, 정치의 일상화를 꿈꾸는 17년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하여 제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섭지코지 한가운데 들어선 건물... 주민들이 잃어버린 풍경
  2. 2 우리 부부의 여행은 가방을 비우면서 시작됩니다
  3. 3 '우천시' '중식' '심심한 사과' 논란, 문해력만 문제일까요?
  4. 4 월급 37만원, 이게 감사한 일이 되는 대한민국
  5. 5 제주도라 끊지 못하는 쿠팡, 근데 너무 괴롭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